"AI 쓰고도 실적 안 오르면 내부 보고절차 바꿔보세요"

1 week ago 9
인터뷰

"AI 쓰고도 실적 안 오르면 내부 보고절차 바꿔보세요"

'기업 HR 전문가' 김성준 국민대 경영대학원 교수
보고서 작성 속도 빨라져
개인 생산성은 올랐지만
임원 보고·회의는 그대로
경직된 구조 AI 전환 막아
10명 하던 일 5명 해도
나머지 5명 재배치 어려워
노동시장 유연성도 관건

사진설명

"리더들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을 써보면 개인 생산성은 30~40% 오른 것 같은데 이상하게 조직 생산성은 그대로라는 겁니다."

김성준 국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고민을 이렇게 전했다. 회의 녹음은 바로 요약되고 이메일도 금방 정리된다. 세 시간 걸리던 보고서 초안이 20분 만에 나오고 법률 검토나 자료 분석도 예전보다 쉬워졌다. 그런데 정작 AI를 써서 회사의 수익이나 시장점유율이 크게 달라졌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개인은 빨라졌는데 회사는 왜 빨라지지 않는가.

김 교수는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인사 시스템 구축 업무를 맡았으며, LG그룹·CJ그룹 인사 자문을 거쳐 현재 세아그룹과 KIA의 인사 자문을 맡고 있는 HR 전문가다. 데이터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주요 대기업의 인사 혁신과 조직문화 설계를 자문해 온 그는 "AI 시대의 진짜 과제는 기술 도입이 아니라 조직 운영 체제의 변화"라고 말했다.

◆ 개인은 빨라져도 조직은 그대로

그는 개인 생산성과 조직 생산성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 생산성 개선은 바로 체감된다. AI가 초안을 만들고 반복 작업을 줄여 정보를 정리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 생산성은 매출, 영업이익, 인건비 절감, 시장점유율 같은 후행 지표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조직 안의 보고 체계와 의사 결정 구조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김 교수는 "개별 구성원이 보고서를 쓰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팀장이 그 보고서를 리뷰해야 하는 시간과 주의력은 그대로"라며 "그 위 임원 보고와 회의까지 남아 있으면 각 단계에서는 빨라져도 위로 올라갈수록 병목은 남는다"고 말했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조직 안의 '가짜 일'이다. 고객 가치와 직접 관련이 없고 내부 프로세스를 개선하지도 않지만 조직 안에서는 성과처럼 취급되는 일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보고서와 발표 자료 작성이다. 예전에는 시간이 없어 이메일이나 구두 보고로 끝내던 사안도 AI가 들어오면 보고서가 된다. 작성 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AI 전환을 단순한 업무 효율화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AI 퍼스트나 AI 네이티브 조직은 AI 도구를 많이 쓰는 조직이 아니라 업무 방식과 의사 결정 구조 자체를 AI에 맞게 바꾼 조직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구성원들이 내 일 중 어떤 부분을 AI로 편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개인 생산성은 올라가도 조직 생산성은 제자리걸음"이라고 지적했다.

◆ 빅테크 감원은 체질 개선

이 지점에서 김 교수는 메타·마이크로소프트(MS) 등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주목한다. 그는 이런 흐름을 단순한 인건비 절감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구성원들이 기존 방식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조직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해석이다. 인력이 대폭 줄어든 상태에서도 기존 일을 해내려면 보고 체계와 조직 구조, 업무 분장, 회의 방식까지 모두 바꿔야 한다. 김 교수는 "체질을 바꾸려면 AI로 일하지 않으면 못 버티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며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기존 구조가 그대로 있으면 사람은 자기 사고의 틀 안에서 움직인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에는 이 문제가 어렵다. 미국처럼 인력을 자유롭게 이동시키고 조직을 빠르게 재편할 수 있는 노동시장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요즘 경영진들이 많이 고민하는 것도 이 지점"이라며 "AI로 효율화해 10명이 하던 일을 5명이 할 수 있게 됐을 때, 남는 5명에게 무엇을 맡겨야 할지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한국도 노동 유연화 논의해야

스타트업이라면 남는 인력으로 새로운 앱을 만들거나 신사업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은 다르다. 안정성과 전문성을 기대하고 들어온 구성원이 많은 만큼 갑자기 새로운 사업을 해보려 해도 조직 역량과 문화가 따라가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남는 인력을 흡수하기 위해 '가짜 일'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다시 조직의 군살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이 AI 퍼스트 조직으로 가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성 논의를 피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다만 단순히 해고를 쉽게 하자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빠른 재취업을 돕는 제도와 재교육, 사회 안전망까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혜순 기자 / 사진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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