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간 뒤처진 민법…경제현실 맞게 고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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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형 서울대 교수(전 대법관)가 16일 서울대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법 전면 개정 관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김재형 서울대 교수(전 대법관)가 16일 서울대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법 전면 개정 관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형택 기자

“김병로 전 대법원장이 민법 초안을 만든 게 1954년입니다. 민법 개정은 시대적 과제입니다.”

김재형 전 대법관(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1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환갑’을 넘긴 민법의 비효율적인 조문을 개정해 국민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촉진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달 7일 민법 중 계약법 영역 200여 개 조문을 대폭 수정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올해로 제정 67년째를 맞은 민법을 현대화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국내 민법학계의 대가로 꼽히는 김 전 대법관은 2023년 6월 발족한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 검토위원장으로 합류해 법률안 개정을 이끌었다.

◇“국민이 이해하는 법률로 거듭나야”

법무부는 이번 개정안에서 법과 현실의 간극을 좁히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계약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우리 민법이 제정 당시 참고한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주요 대륙법계 국가의 민법은 2000년대 개정이 완료됐다.

김 전 대법관은 “민법은 국민의 사회생활은 물론 경제활동에 필수적인 기본법으로 1958년 제정 이후 경제·문화·사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며 “위원회 내부적으로도 ‘현실적으로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는 개정안을 만들자’는 의견이 모였다”고 말했다.

개정위는 기존 민법전의 한자어와 일본식 표현을 대거 고쳤다. 물건에 하자가 있으면 매도인이 책임지도록 하는 ‘매도인의 하자담보책임(580조)’이 대표적이다. 개정안에는 일본식 표현인 ‘담보’가 삭제됐다. 김 전 대법관은 “국민 입장에서 담보는 저당권을 떠올릴 수밖에 없으니 혼란스럽다”며 “법률가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조항을 국민들에게 지키라고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 현실 반영한 유연한 법체계로

이번 개정안은 기존 연 5%로 고정된 법정이율(379조)을 기준금리 등을 고려해 변동이 가능하도록 변경했다. 법정이율은 이율에 대한 약속이 없을 경우 채무불이행 손해배상 기준이 된다. 시중 이율이 변화하는데 법정이율이 고정된 것은 계약 당사자의 이익이나 손실을 불필요하게 키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 전 대법관은 “개인이나 기업의 사적 거래에서 물가 변동에 따라 이율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며 “대통령령을 통해 자문위원회를 설치해 경제계와 산업계 인사들의 의견을 듣고 이율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학적으로 적정한 이익이 어느 정도인지 논의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란 의미다.

계약 체결 이후 예측 불가능한 사정이 발생하면 계약을 수정·취소하는 조항(538조의2)도 신설됐다. 민법학에서 ‘사정변경의 원칙’이라고 부르던 개념이 법조문으로 명시된 것이다. 김 전 대법관은 “사정변경의 원칙은 실무적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다가 코로나19 이후 계약을 이행하지 못해 분쟁이 급증하며 하급심에서 적용하는 사례가 대폭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선 계약을 맺은 이후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거나 코로나19처럼 방역 조치로 생산 원가가 높아질 수 있다”며 “계약 체결 당시 당사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 계약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AI 시대, 선제적 입법 필요

김 전 대법관은 빠르게 진화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사회가 신속하게 입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입법이 미비하면 법원의 해석에도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령 인공수정은 1970년대에 등장한 개념이지만, 민법에는 여전히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결정하는 규정이 없다”며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남편이 제3자 정자 제공에 동의했다면 친자관계가 생긴다’고 판결했지만, 이는 입법의 부재를 법원이 메우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김 전 대법관은 일방적인 입법은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1997년 12월 29일 임시국회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요청으로 아무런 논의도 없이 이자제한법을 폐지한 것이 여전히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며 “연 100%의 초고금리가 나오는 등 혼란이 이어지다가 끝내 법이 부활했다”고 회고했다. 법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민법개정위는 오는 19일까지 입법예고를 통해 의견을 접수하며, 계약법 개정이 완료되면 담보법 개정에 나설 계획이다. 김 전 대법관은 “민법 개정 작업에 국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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