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임원 성과급을 자사주로 지급한다.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단기 실적뿐 아니라 근원 경쟁력 회복이 관건이란 점에서 사실상 전 임원을 대상으로 책임 경영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올해 임원에 대한 초과이익성과급(OPI)의 일부를 자사주로 지급한다고 17일 발표했다. 전체 성과급에서 자사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무 50% 이상, 부사장 70% 이상, 사장 80% 이상, 등기임원 100% 등이다. 올해 성과를 토대로 내년 1월 지급한다. 부사장 이하는 지급일로부터 1년간, 사장단은 2년간 자사주를 팔지 못한다.
내년 1월 주가가 약정을 체결한 올해 1월보다 오르면 약정한 수량대로 받을 수 있지만, 떨어지면 하락률만큼 지급 수량이 줄어든다. 1년 뒤 주가가 10% 빠지면 약정 주식 수량의 90%만 받는 식이다. 평가손실은 별도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임원 성과급을 주가와 연계한 것은 단기 실적뿐 아니라 고대역폭메모리(HBM), 파운드리 등 경쟁사에 밀린다는 평가를 받는 핵심 사업 경쟁력을 다시 궤도에 올리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성과급 50% 이상 자사주로 지급…주가 하락 땐 덜 주는 충격 요법
동기 부여로 반도체 경쟁력↑, 내년엔 일반 직원 적용도 검토
삼성전자에 ‘5만전자’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은 건 작년 10월15일이었다. 삼성은 이후 65거래일이 지나도록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사주를 10조원어치 사겠다고 해도, 사장들이 사비를 털어 주식을 매입한다고 해도 반짝 상승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장이 원한 건 단기 부양책이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 등 주력 사업의 근원 경쟁력 회복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찾은 해법은 일선에서 뛰는 임원들의 ‘책임 경영’ 의지를 북돋는 것이다. 모든 임원을 대상으로 성과급의 절반 이상을 자사주로 주고, 1년 뒤 주가가 하락하면 자사주 지급 물량 자체를 줄이는 파격적인 구조를 설계한 이유다.
○ 새로운 성과급제 도입
삼성전자가 17일 발표한 신(新)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의 핵심은 주가가 떨어지면 임원이 받는 자사주 물량 자체를 줄인 것이다. 임원은 성과급의 50~100%를 ‘1년 뒤’에 주식으로 받는다. 약정 체결 이후 주가가 떨어지면 하락률만큼 지급 주식 수량이 줄어들도록 했다. 1년 뒤 주가가 30% 하락하면 약정한 주식 수량의 70%만 받는 식이다. 평가손실에 주식 수량 감소가 더해지는 만큼 임원들이 손에 쥐는 성과급은 훨씬 더 줄어드는 셈이다. 주가가 약정 체결 당시와 같거나 상승하면 약정 수량대로 받을 수 있다.
직급이 높을수록 의무 보유 기간이 늘어나는 것도 특징이다. 부사장 이하는 지급일로부터 1년간, 사장단은 2년간 주식을 팔 수 없다. 직급이 높을수록 긴 안목으로 책임 경영을 해달라는 의미다.
○ ‘근원 경쟁력 회복’ 높이겠다
삼성이 파격적인 임원 성과급제를 도입한 첫 번째 이유는 주가 부진 장기화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해 7월 8만8800원을 찍은 이후 줄곧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넉 달 뒤인 11월 14일엔 4만9900원까지 떨어졌다.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도 소용없었다.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 납품이 계속 늦춰지는 등 근원 경쟁력 하락 의구심이 걷히지 않은 탓이다.
시장의 요구가 단기 부양책이 아니라 ‘근원 경쟁력 회복’에 있다는 걸 확인한 삼성전자 경영진은 쇄신을 이끌 선봉장으로 1171명(2024년 3분기 말 기준)에 달하는 임원을 떠올렸다. 이들에게 건넬 성과급을 주가와 연동해 업무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년 뒤 주가와 연동해 자사주 지급 수량을 결정하는 건 지난 1년간의 성과만 따지는 게 아니라 향후 1년간 주가 하락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26년부터는 이런 형태의 신 OPI 제도를 일반 직원에게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의무가 아니라 선택사항으로 하고, 주가가 떨어져도 자사주 지급 수량을 줄이지는 않을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부문·사업부별 OPI 지급률도 공개했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모바일경험(MX)사업부는 44%, 반도체(DS)부문은 14%로 결정됐다.
김채연/황정수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