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 도그마'에 빠진 부동산 정책…시장은 냉혹한 숫자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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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는 역대 진보 정부의 최대 난제이던 부동산시장 안정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해 6월 출범 이후 정부는 담보대출 제한, 다주택자 규제,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등 규제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수요 억제에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망국적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뛰고 전세 물량은 급감하는 등 시장은 정부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 1년간 서울 부동산 성적표는 ‘매매가 약 11%, 전·월세 가격 6~7% 상승’으로 요약된다. 업계에서는 매매, 전세, 월세 ‘트리플 상승’의 원인으로 다주택자 규제와 공급 위축을 꼽는다. 정부는 지난해 ‘6·27 대책’과 ‘10·15 대책’을 통해 규제지역 대출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제한하고, 서울과 경기 12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 등 규제지역으로 묶었다. 공공 주도 6만 가구 공급(1·29 대책)이 구체화할 때까지 수요를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수요를 억누르는 동안 공급 기반이 더 약해졌다고 분석한다.

'5가지 도그마'에 빠진 부동산 정책…시장은 냉혹한 숫자로 답했다

서울 주택시장은 공사비 상승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색, 재건축·재개발 사업 지연 등으로 공급 부족 우려가 누적됐다. 여기에 다주택자 규제 강화 이후 전·월세 물량이 감소해 무주택 서민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다음달께 임대사업자와 다주택자는 물론 비거주 1주택자를 겨냥한 세금 규제 강화도 예고돼 있다.

시장에서는 수요 억제 정책만으로는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동성 확대와 물가 상승에 따른 자산 가격 상승, 전·월세 공급자로서 다주택자의 역할, 전세 제도의 순기능 등을 인정하고 민간을 주택 공급의 파트너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李정부 실용과 도그마 사이…매매·전·월세 '트리플 상승'
징벌적 과세론 집값 잡기 실패…매물 잠그고 '부의 대물림'만

'5가지 도그마'에 빠진 부동산 정책…시장은 냉혹한 숫자로 답했다

“생산적 금융 강화는 피할 수 없다” “다주택자는 물론 주거용이 아닌 투자·투기용 1주택자도 보유보다 매각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겠다” “초고가 주택은 선진국 수도 수준의 부담과 규제를 안게 될 것이다”….

현 정부가 지난 1년간 부동산과 관련해 강조해 온 ‘부동산 명제’다. 지난해 대출 규제책인 ‘6·27 대책’을 시작으로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10·15 대책’ 등 강도 높은 수요 억제책을 이 같은 명제들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내 집을 담보로 대출받거나 원할 때 이사하는 게 어려워졌다. 집값 안정이라는 목표가 이를 정당화했다.

시장은 냉혹한 숫자로 정부 정책에 답했다. 집값뿐 아니라 전세난과 월세 전환 가속화, 공급 절벽이라는 난제까지 더 복잡하게 얽혔다. 시장을 전장으로 바라본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 정부가 집값 잡을 수 있다

현 정부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주식 등 더 매력적인 금융 투자 수단을 육성해 수요를 전환하는 전략적 접근을 하기도 했다.

정부가 지난 1년간 수요를 억제하고 예측 가능성이 높은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에 집중했지만 성적표는 초라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10.76%, 전세가는 7.16% 상승했다. 월세 역시 6.62%(2025년 6월~2026년 5월 기준) 오르며 3중 주거 불안이 현실화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시장에서 매매가와 전세가 상승이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물가 인상과 통화량 증가 등에 따른 자연스러운 가격 상승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아파트값 중위가격은 최근 20년간 2.7배 올라 짜장면값 상승률(2.3배)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다주택자와 전세 낀 매매를 집값을 올리는 투기 대상으로 상정하면서 오히려 시장을 왜곡하거나 특정 지역 집값을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실거주 강화 정책과 다주택자 규제로 전세 매물이 줄자 ‘전세가 상승→전세의 월세화→경기 외곽지역 매매·전세가 상승’ 등 연쇄적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집값과의 전쟁’을 선포한 진보 정부에서 집값이 더 오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권 초기 1년 기준 노무현 정부에서는 아파트 가격이 12.1%, 문재인 정부에서는 7.6% 상승했다. 규제 완화에 방점이 찍힌 박근혜(1.3%), 윤석열(-11.0%) 정부보다 집값 불안이 컸다. 제도와 시스템 개선을 통해 민간에서 자생적인 공급이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게 집값 안정의 ‘키’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2) 세금으로 부동산 수요 억제할 수 있다

정부는 ‘최후의 수단’이라던 세금으로 집값 잡기를 강행하는 분위기다. 여당이 6·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을 내준 뒤 속도 조절을 할 것이란 예상이 나왔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잇달아 보유세와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역대 진보 정부는 집값이 올라 민심이 동요하면 보유세를 올렸다. 그때마다 집값은 잠시 마이너스로 돌아섰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를 설계한 김수현 전 문재인 청와대 정책실장은 저서 <부동산과 정치>에서 “세금이 중요한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집값에 분노한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의 세금만 계속 높이려는 방식은 포퓰리즘일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가 앞서 올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부활을 예고하고 지난달 9일 시행할 때까지 상반기 주택 가격이 일시 하락했다. 하지만 이후 매물 잠김 현상이 나타나며 집값은 오름세로 돌아섰다. 정부는 또 다른 세금으로 매물 출회를 압박하는 분위기다.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올리고 비거주 1주택자의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줄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양도세는 양도차익을 얻었을 때만 부과할 수 있다. 아무리 세금을 올려도 안 팔면 그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유세를 올리면 매물로 내놓는 대신 자녀 등에게 증여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보유세와 양도세를 같이 인상한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증여가 역대 최대로 늘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보유세와 양도세를 모두 강화하면 거래 위축 속에 가격 변동성을 일부 억제할 수 있다”며 “보유세 등 세제 개편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시도가 거주지에 따른 신분의 고착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3) 다주택자는 규제해야 한다

정부가 여러 차례 강조한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과 ‘투기 세력 척결’의 핵심 대상은 다주택자다. 주택을 실거주 목적의 기본재로 봤을 때 한 사람이 여러 채의 집을 독점하는 다주택 보유는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제한하고, 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시장 교란 행위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관련 발언에서 ‘다주택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정부 정책 역시 다주택자에게 불리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대출 만기 연장 금지와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같은 전방위 압박으로 매물이 나오도록 유도했다. 임대사업자 등을 겨냥한 추가 세제 카드도 검토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다주택자가 ‘민간 임대 시장의 40%를 책임지는 전·월세 공급자’라는 다면성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육성과 압박을 반복해 온 임대사업자 제도 역시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주택자를 압박하면 집을 내놓을 것이고 그 집을 무주택자가 사면 된다는 일각의 주장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서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40~50% 수준이어서 다주택자가 집을 내놔도 전세로 살던 무주택자는 집을 살 수가 없다”며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고가 지역보다 실수요자 중심의 외곽 지역 집값이 더 많이 뛰는 건 다주택자 규제의 부작용 때문”이라고 말했다.

(4) 전세는 없어져야 할 제도다

전세 제도는 수년간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의 지렛대가 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적 금융 성격이 강하고 해외에선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꾸준히 제기됐다. 정부가 토지거래허가 규제를 통해 세 낀 매매를 막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세보증금이라는 사적 금융 구조가 유지되는 한 투기 수요를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충분한 유예 기간과 대체재가 없는 상황에서 인위적인 ‘전세 없애기’는 시장에 큰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전세 물건은 1만9438건으로 1년 전(2만5046건) 대비 22.3% 줄었다. 감소율 기준 중랑구(-81.1%) 노원구(-76.1%) 성북구(-75.7%) 관악구(-68.0%), 금천구(-67.3%) 등 상위 10곳 중 9곳이 외곽 지역이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9.8%로 절반에 육박했다. 올해 1~5월 서울에서 체결된 월세 300만원 이상 거래는 3688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3078건)보다 19.8% 증가했다. 심형석 법무법인 조율 수석전문위원은 “집주인은 자산 구조상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세입자는 다르다”며 “도심 수요가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중저가 지역 매매와 전세가를 동시에 밀어 올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세가 서민의 주거 안정과 주거 사다리(이동성) 기능을 해온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50년 넘게 시장에서 운영된 제도인 만큼 전세 제도 개편 역시 시장 충격을 줄이는 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5) 건설·부동산은 비생산적 금융이다

정부는 부동산시장으로의 자금 흐름을 ‘비생산적 금융’으로 규정하고 관리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기존 주택 거래’와 ‘새 주택을 짓는 건설’을 동일시한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건설업(산업 부가가치)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15%, 고용의 10% 안팎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신축 주택 공급(건설)은 고용을 창출하고, 시멘트 철강 등 소재 산업과 가전 가구 인테리어 등 전후방 내수산업 전반의 수요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단순 자산 거래와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다.

비생산적 금융으로 간주해 돈줄이 막히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얼어붙고 주택 공급도 막히고 있다. 올해 1분기 건설업체 폐업은 108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25건)보다 17.6% 늘었다.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에 따르면 지난해 3만3822가구였던 서울 시내 입주 물량은 올해 1만7134가구로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당국의 재건축·재개발 이주비 대출 제한도 공급 차질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만 35개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3만여 가구의 이주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이는 착공과 준공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쳐 중장기 공급난을 심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울 주택시장은 정비사업 의존도가 높다. 직방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신규로 입주한 물량 3만3342가구 가운데 93%에 해당하는 3만 가구가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공급됐다. 업계에서는 민간 정비사업이 위축되면 도심 주택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유정/김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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