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3일 만에 퇴사한 중국집 배달원이 "부당 해고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일을 못 하는 상태가 됐다"며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기각됐다. 구인공고에 없던 '전단지 배포'를 요구한 게 발단이 됐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중국집 배달원이었던 A씨가 중국집 사장과 지배인, 홀매니저를 상대로 청구한 해고무효확인 및 임금 등 청구의 소 항소심에서 1심와 마찬가지로 A의 청구를 기각했다. 전문가들은 "업무범위가 구체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채용이 이뤄질 경우 불필요한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근로계약서에 주요 업무를 명확히 명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3일 일하곤 "부당해고 당했다 "…거액 소송
A씨는 2022년 9월 일당 14만원을 제시한 서울 서초구 소재 중국집 배달 직원 구인광고를 보고 취업했다. 입사한지 3일째 되는 날 저녁 9시경 지배인의 아들인 홀매니저는 A씨에 "배달이나 그릇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주택이나 건물에 들어가 전단지 배포 등 홍보 업무도 수행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A씨가 이를 거부했다. 퇴근 시간 이후 2시간 넘게 이어진 대화 끝에 홀 매니저는 감정이 상해 “홍보 업무 안할거면 출근하지 말라”고 말했다.
다음날 A씨가 출근하지 않자 지배인은 A씨에게 "내일 출근하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하지만 A는 "아드님(홀매니저)이 출근하지 말라고 해서 내 의사에 반해 근로관계가 종료됐다"고 답장하고 사업장에 출근하지 않았다. 이후 지배인은 전화로 "그럼 일이 종료됐으니 (3일 치) 임금을 계산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이어 중국집에는 '소송 지옥'이 펼쳐졌다. A씨는 "부당해고 당했다"며 홀 매니저와 지배인, 사장 등 3명을 소송을 제기한 것. A씨는 “부당해고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복직도 불가능한 상태”라며 근로를 제공하지 못하는 732일간의 임금, 연차휴가미사용수당, 퇴직금 등 총 1억8700만원을 달라고 청구했다. 홀 매니저와 전단지 업무와 관련해 늦게까지 얘기를 나눈 것에 대해선 '야간근로수당'도 청구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A씨는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1억9500만원도 별도로 청구했다. A는 "배달 업무 외에 홍보업무를 시키면서도 구인 공고에는 배달업무만 담당하는 것처럼 냈다"며 위자료 2000만원을 청구했고, 홀매니저가 자신과 전단지 업무와 관련해 늦게까지 얘기한 것도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위력으로 감금한 것"이라며 3000만원을, 또 감금을 통해 '강제근로'를 시킨 것이라며 3000만원을 별도로 청구했다.
그밖에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았다며 800만원, 근로계약서 미작성 이유로 200만원, 직장 내 괴롭힘을 이유로 300만원, 직장 내 괴롭힘 발생시 조치의무 미이행을 이유로 1200만원, 모멸감을 줬다는 이유로 2000만원, 부당해고와 관련된 위자료로 7000만원을 요구했다. 거기에 A의 부인 역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며 3000만원을 청구했다. 결국 A와 A의 부인이 1심에서 함께 청구한 금액은 총 3억8200만원에 달했다.
○법원 "전단지 배포 업무, 배달과 무관하지 않아" 청구 기각
1심 법원은 "해고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홀매니저에게는 해고 권한이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되레 지배인이 내일 출근하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원한다면 근로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만 봐도 (해고가 아니라) 근로관계를 '합의'로 종료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를 바탕으로 해고무효 확인청구, 임금청구도 모두 기각했다.
법원은 A씨가 홀매니저와 늦게까지 얘기를 나눈 것도 "홀 매니저와 홍보 업무에 대한 얘기를 나눈 게 '사용자'의 지휘·감독이라고 할 수 없다"며 연장야간근로가 아니라고 봤다.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대해서도 “배달 직종의 특성상 구두 합의로 근로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고, 단기간 근로가 종료하는 사례도 흔하다”며 불법행위 요건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공고에 홍보 업무를 미기재한 것도 "배달이나 그릇 수거 과정에서 전단지 배포 등 홍보 업무가 배달 업무와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허위로 볼수 없다고 봤다.
1심에서 완패한 A씨는 2심 법원에 항소하면서 부인을 원고에서 제외하고, 부당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 청구액 등을 대폭 삭감해 전체 청구액을 7500여만원까지 줄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제1심판결은 정당하다"며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해당 사건은 다소 극단적 사례지만 실제 현장에선 영세 사업주들이 노동법에 어두운 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감정적인 언사보다는 계약서 작성 등 근로기준법에 충실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