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경기 파주 서원밸리CC에서 관객 1520명이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지역주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시작한 이벤트는 25년의 세월을 거치며 한국을 대표하는 K팝 페스티벌이자 초대형 자선공연으로 자리잡았다. 오는 31일 열리는 ‘그린콘서트’가 주인공이다.
그린콘서트를 앞두고 만난 최등규 대보그룹·서원밸리CC 회장(사진)은 기분좋게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매년 5월이 되면 잔디에 파릇파릇 생기가 돌아 설레이고, 집을 깨끗이 단장하고 귀한 분들을 초대한다는 마음에 또 한번 설레인다”며 “올해도 변함없이 내 집에 귀한 손님들을 모신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원밸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한국골프협회(KGA) 대회를 모두 치르며 완벽한 코스로 인정받는 국내 명문 회원제 골프장이다.
그런데 그린피를 가장 비싸게 받을 수 있는 5월 마지막 토요일, 영업을 접고 무료 뮤직페스티벌을 연다. 밸리코스 1번홀에는 콘서트를 위한 거대한 무대가 마련되고 다른 홀에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기구가 설치된다. 벙커에서는 어린이 장사를 뽑는 씨름대회가 펼쳐지고, 페어웨이 곳곳에서는 돗자리를 펴고 봄날을 만끽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시작은 최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휴게소를 운영하는 대보유통을 비롯해 대보정보통신, 대보건설, 서원밸리 등을 거느린 대보그룹을 연매출 2조원, 직원 4000여 명 규모의 기업으로 키운 입지전적인 기업인이다.
그는 2000년 어느 주말, 직원이 데려온 아이들이 골프장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골프장 페어웨이와 벙커가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터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회원과 골퍼들에게만 공개되는 회원제 골프장이지만, 지역 주민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그린콘서트는 지난해까지 20회에 거쳐 누적관객 57만명을 넘어서는 K팝 콘서트가 됐다. 방탄소년단, 아이유 등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찾으면서 일본, 동남아시아, 유럽 등 전세계 팬들이 찾는 페스티벌이 됐다. 올해는 ‘가족 모두가 행복한 하루’라는 콘셉트로 송가인, 장민호, 손태진 등 트로트 스타를 비롯해 윤종신, 피프티피프티, 빌리, 이븐, 딘딘, 방예담 등 22개 팀이 봄밤을 수놓을 예정이다.
그린콘서트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나눔’이다. 현장 곳곳에서 진행되는 바자회와 음식 판매 수익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한다. 스타들도 무료로 출연하며 자선에 동참한다.
그는 “직원들이 당일 아침까지 손으로 하나하나 돌을 골라낸 잔디밭 위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1년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며 “아이들이 ‘그린콘서트 할아버지’라고 불러줄 때는 정말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보람을 느낀다”고 미소지었다.
콘서트와 함께 압도적인 장관을 자랑하는 요소가 또 있다. 서원힐스CC 9개홀 페어웨이에 마련되는 주차장이다. 평소 카트도 들어가지 않는 페어웨이에는 전국에서 찾아온 팬들이 주차할 수 있도록 전면 공개된다.
최 회장은 “그린콘서트가 열리는 날은 자동차도 잔디에서 호강하는 날”이라며 껄껄 웃었다. 페어웨이 주차장이 처음 도입된 것은 2008년, 관람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1만명 이상을 수용하기 위한 주차 시설이 필요해졌다. 최 회장은 “페어웨이를 주차장으로 활용하면서 4만명까지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게 됐다”며 “콘서트 후 잔디, 벙커 등 코스 곳곳을 관리해 완벽한 컨디션으로 복구해주는 코스 관리팀 등 많은 임직원, 그리고 회원님들께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올해 그린콘서트는 누적관람객 60만명, 누적 기부금 7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 회장은 “그린콘서트에 오신 모든 분께 올해 가장 행복한 하루를 선물하겠다”고 강조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