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문수가 막 1등 하고 그런다면서요? 왜 그런 거예요?"
최근 기자가 비정치권 인사들을 만날 때면 꼭 나오는 단골 질문입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을 생각하면 '나 도지사 김문수인데'라는 강렬한 논란이 떠오르는데, 여권 잠룡으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입니다. 이처럼 충격과 반전의 '김문수 신드롬'에 대한 갑론을박은 설 명절 밥상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김 장관이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한국여론평판연구소(KOPRA, 지난 3~4일 실시 5일 공표, 1000명 대상) 국민의힘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 조사에서 11%로 한동훈 전 대표와 오차범위 내 공동 선두로 올라선 뒤부터 쭉 고공행진입니다. 김 장관은 설 연휴 전 공표된 전국지표조사(NBS, 지난 20~22일 실시 23일 공표, 1000명 대상)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28%)에 이어 14%를 기록, 홍준표 대구시장(7%), 오세훈 서울시장·한 전 대표(6%) 등 여권 잠룡들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질렀습니다.
범야권 1위인 이 대표와 양자 대결에서는 접전을 벌였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정치권을 술렁이게 했습니다. 조원씨앤아이(시사저널 의뢰, 지난 18~19일 실시 23일 공표, 1006명 대상)가 이 대표와 김 장관의 양자 가상대결을 실시한 결과 김 장관 46.4%, 이 대표 41.8%로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여론조사공정㈜(데일리안 의뢰, 지난 20~21일 실시 23일 공표, 1014명 대상) 조사에서도 양자 대결에서 이 대표 41.5%, 김 장관 38.3%로 오차범위 내 박빙이었습니다.
김 장관 상승세에 대한 정치권의 해석은 분분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체포·구속으로 결집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여론조사에 과표집되면서 나타난 결과이자,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게 대체적인 풀이인데요. 윤 대통령 구속으로 갈 곳을 잃은 강경 보수층이 김 장관에게 잠시 몰린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다만 최근 만난 한 민주당 의원은 "지금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여론도 일시적이든, 일시적이지 않든 명백한 현상이자 실체"라고 짚었습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난 23일 민주당 주최 토론회에서 "보수 (지지층)의 분포를 모르는데 어떻게 과표집을 얘기할 수 있느냐.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윤 대통령 지지 집회 현장을 찾을 때마다 '김문수'를 외치는 이들이 상당하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지지자들은 "어차피 탄핵이 안 될 거니 조기 대선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끝까지 윤 대통령을 지킨 정치인은 김문수밖에 없다", "진짜 친윤(親윤석열)은 김문수", "진국이다"라고 김 장관을 호평합니다. 김 장관이 강경 보수층의 마음을 얻은 데는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 등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 사태에 허리를 굽혀 사과할 때 끝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야권은 "김 장관은 이 대표에게 상대가 안 된다"(박지원 민주당 의원), "중도나 무당층 소구는 난망한 일(조응천 개혁신당 특보단장) 등 김 장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앞서 민주당 의원이 지적했듯, 여론조사는 분명 실체인 만큼, 이들의 결집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김 장관의 지지층은 아스팔트 보수, 아스팔트 민심이다. 어찌 됐든 10% 안팎의 지지율이 꾸준히 나온다는 건 김 장관에게 엄청난 무기가 쥐어졌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지율 상승세는 포착됐으니, 이제 김 장관이 정말 필드로 나오느냐가 최대 관심사입니다. 김 장관의 향방에 대해선 전망이 다양합니다. 김 장관과 가까운 인사에 따르면 김 장관은 조기 대선이 열리더라도 출마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크지만, 주변 일부가 출마를 권유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김 장관이 1951년생 73세로 이번이 아니면 사실상 더 이상 기회가 없을 수 있고, 그동안 오랜 기간 정치를 해오면서 챙겨야 할 사람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민의힘이 아닌 제3당에서 출마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이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창당한 자유통일당이 거론됩니다. 김 장관의 지지율 흐름이 이어진다면 추후 조기 대선 본선 국면에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김 장관에게 단일화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정치공학적인 시나리오인데요. 이 경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는 계산입니다. 김 장관이 출마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습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김 장관 스스로도 지금의 지지율이 일시적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장관은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그는 "노동부 장관은 서열 16위이고 정치적인 위치에 있지도 않은데 언급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상당히 답답하고 목마르다는 것"이라며 "나 같은 사람은 고용노동부 일만 잘하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돼야 하는데 대선후보로 오르내리는 것이 안타깝다"고 지난 6일 말한 이후 따로 대권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판은 시시각각 상황이 변하기 때문에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운동권 황태자'로 불렸던 김 장관의 제2의 전성기가 도래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한편, 기사에서 언급한 KOPRA 조사, 조원씨앤아이조사, 여론조사공정 조사는 무선 RDD를 이용한 ARS 방식으로 진행, 응답률은 각각 4.7%, 6.7%, 5.0%. NBS 조사는 휴대폰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 응답률은 22.2%. 모든 조사의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