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기득권을 형성한 지배세력이 아니라 오롯이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집단이 필요했던 것이 과거제가 생겨난 근본적인 이유였다. 중국에서도 과거제는 수나라 때 본격적으로 도입됐는데, 그 이유 역시 문벌 귀족에 맞설 관료를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과거라고 하면 장원급제로 대표되는 문관 시험만 연상하기 쉽다. 하지만 무관을 선발하는 시험(무과)과 전문 기술직을 뽑는 시험(잡과)도 있었다. 고려에는 무과가 없었고, 조선에는 승려를 대상으로 치르는 승과가 한시적으로 시행됐다. 문과와 무과, 즉 문반과 무반을 뽑는 과거제가 가장 대표적이었기 때문에 관료층을 문·무반, 두 반이라는 뜻의 양반이라 부르게 됐다.
과거제는 여러 단계를 거쳐 치렀다. 문과 시험은 소과를 먼저 치렀는데, 소과는 경전에 대한 이해를 평가하는 생원과와 문장력을 평가하는 진사과로 나뉘었다. 여기에 각각 초시와 복시를 거쳤다. 소과에 합격하면 대과를 칠 자격을 얻는데, 대과는 초시·복시·전시 등 세 단계로 진행됐다. 대과 시험에는 지역할당제가 적용됐다. 전국에서 초시를 통과한 240여 명이 한양에 모여 복시를 치렀고, 이 가운데 33명이 선발돼 전시에 나갈 수 있었다. 전시는 임금 앞에서 보는 시험으로, 당락을 가리지 않고 응시자는 모두 관료로 선발됐다.하지만 이는 원칙에 불과했다. 결국 관료집단도 귀족화되면서 관직을 독점하게 됐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집착하게 됐다. 그 결과 전국 단위의 시험이 아닌 별시와 같은 특별시험을 치르게 됐다. 정규 시험이 아닌 임시 시험을 치르게 되면 사실상 지방 유생들은 응시하기 어려웠고, 결국 조선 말에 이르면 급제자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공정한 인재 선발을 통해 왕권을 강화한다는 과거제의 정신은 조선 말에 이르러 사라지고 말았다.
1894년 5월 15일 마지막 과거 시험이 치러졌다. 시험에 앞서 고종은 과거의 폐단이 심각하다며 이번 시험을 잘 살펴보겠다는 말까지 했다. 결국 같은 해 음력 7월 3일, 초법적 개혁기구였던 군국기무처에 의해 과거제는 폐지됐다. 하지만 이를 대체한 인재 선발은 추천에 의존한 탓에 관료의 수도권 집중을 훨씬 더 심화시켰다. 고대 경전을 외우고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문을 적는 과거제를 폐지한 건 시대적 요구였지만, 급격한 개혁이 낳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던 셈이다. 이 때문에 과거제 부활을 요구하는 여론도 높았다. 조선이 이때 인재 등용의 틀을 근대화할 수 있었다면 망국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문영 역사작가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6 hours ago
4
![[사설]월 수출 1000억弗 돌파, 연 수출 1조弗 눈앞… 日도 못 가본 길](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7/01/134216150.1.jpg)
![[송평인 칼럼]위화감의 시대](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7/01/134220881.1.jpg)
![트럼프, 임기 첫해 22억 달러 벌었다[횡설수설/김창덕]](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7/01/134220879.1.jpg)
![[오늘과 내일/정양환]서울국제도서전이 남긴 숙제](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7/01/134220815.1.png)
![[광화문에서/하정민]맘다니 뉴욕 시장이 야기한 美민주당과 유대계의 균열](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7/01/134220807.1.png)
![사실과 신화 사이[이은화의 미술시간]〈429〉](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7/01/134218774.4.jpg)






![[속보] 北, 韓·EU성명에 “체제존중 위장 내던져…韓 적대 원칙 불변”](https://pimg.mk.co.kr/news/cms/202606/13/news-p.v1.20260613.89255ddca2b0487c98e7f979e85a8a39_R.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