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이 카피는 에이스침대가 1993년 처음 시작한 TV 광고에 등장했다. 숙면을 돕는 매트리스가 얼마나 많은 기술집약적 제품인지를 ‘과학’이라는 단어로 설명해 파장을 일으켰다. 창업주 고(故) 안유수 회장의 장남인 안성호 에이스침대 대표가 입사한 이듬해의 일이었다.
침대라는 것이 보급되기 한참 전인 1963년 설립된 에이스침대는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휩쓸었다. 외국산뿐이던 침대를 일일이 해체해 제조했기 때문에 최초의 국산 스프링, 최초의 국산 매트리스 완제품, 최초의 침대 수출 등을 이뤄냈다. 창업 17년 만인 1980년 에이스침대는 중동 아랍에미리트에 침대기술을 수출해 가구업계 최초로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선수촌에 들어갔던 1만3000개의 침대도 에이스침대였다. 이후 대여했던 침대들을 판매했는데 하루 만에 전국 대리점을 통해 예약이 끝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아파트의 보급, 올림픽 이후 침대 문화를 받아들이게 되는 시기가 맞물린 것이다.
‘첫 국산 침대 브랜드’ 에이스침대는 지난해 3259억원의 매출과 66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제조업체인데 이익률이 무려 20.3%에 달한다.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은 5.1% 수준이다. 자동차(5~7%), 화학(6~8%), 섬유의복(3~4%) 식음료(4~5%)와 비교해도 월등하다. 불황에도 꾸준히 18~20%대의 이익률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을 안성호 대표에게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에이스는 이익률이 독보적입니다.
“매장으로 쓰는 건물 임대료가 안 나가기 때문이죠. 2003년부터는 빚 없이 무차입경영을 고수하고 있기도 하고요. 은행에 나가는 이자가 없으니까 비용 절감 효과가 타사보다 더 큰 겁니다.”
▶건물을 다 매입하신 건가요.
“건물뿐 아니라 토지 매입부터 시작했죠. 매장에 맞게 건물을 올린 곳이 많습니다. 도산공원 앞에 있는 첫 매장만 선친께서 매입하신 거고요, 에이스애비뉴 서울점부터는 제가 매입했어요. 2000년쯤 네이버부동산 보고 당시 약 80억원가량에 부지를 샀죠.”
▶이때부터 전략을 세운 건가요.
“처음부터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닙니다. 서울 강남은 워낙 빠르게 부동산 시세가 올라서 본사가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사업을 못 하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전국 매장이 전부 자사 건물입니까.
“에이스애비뉴와 에이스스퀘어 대부분이 자사 건물이에요.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갑자기 올리는 일이 잦았어요. 대리점주를 위해 처음 건물을 산 게 울산점이었습니다.”
▶비용이 꽤 들었을 것 같습니다.
“비용이 아니라 투자였죠. 당시 월세가 700만원가량이었는데 건물주가 더 높여달라니까 대리점주가 본사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회사에 현금도 있었기 때문에 약 50억원에 건물을 샀습니다.”
▶무슨 자금으로 투자하신 건가요.
“당시 현금유보금이 1000억원 정도 있었어요. 계속 쌓아둘 순 없었고 재투자 방법을 고민하다가 대리점주가 쫓겨나는 상황을 막아보자고 시작한 거죠. 이후 울산점은 대리점주 임대료를 월 490만원으로 낮춰줬습니다. 지금까지도 월세를 안 올리고 있어요. 상생이 중요하니까요. 수십 년동안 점주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배경이죠.”
▶이후 꾸준히 투자하신 거군요.
“네, 여유가 되는 대로 땅을 사기 시작했죠. 건물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한 곳도 많습니다. 울산이 2010년 12월이었는데 현재 전국 애비뉴와 스퀘어 매장 55곳이 자사 건물이에요. 현재 추가로 부지를 확보해놓은 10여곳을 포함하면 향후 70여곳까지 늘 겁니다. 14년 동안 총 4300억원 정도 투자했어요.”
▶대리점을 직영점으로 바꿀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닙니다. 직영점으로 바꾸면 매출집계 기준이 소매가격이 되기 때문에 매출 수치가 오르긴 하겠죠. 하지만 대리점주들은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합니다. 위탁운영과 자기 사업은 일을 대하는 자세부터 다르죠.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대리점주 분들과의 오랜 파트너십을 유지하기로 한 겁니다.”
▶침대는 전 공정을 자동화(DX)하기 어려운가요.
“예전과 비교하면 자동화 전환할 수 있는 건 대부분 했지만, 결국 매트리스 봉제는 사람이 미싱 기계에 천을 물려주는 작업을 해야만 합니다. 공정이 복잡하고 겹겹이 레이어가 많은 에이스헤리츠 매트리스는 한 사람이 하루에 1개도 못 만드는 경우가 있어요.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죠.”
▶가장 자부하는 기술은 무엇인가요.
“16년 동안 100억원을 들여 개발한 ‘하이브리드 Z 스프링’입니다. 10만번의 테스트 끝에 나온 이 스프링은 전 세계 15개국에서 특허를 받았죠. 연결형 스프링과 독립형 스프링을 이중으로 결합했기 때문에 두 스프링의 장점을 극대화했습니다.”
▶종합 가구를 만들 계획은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침대만 제대로 만들기도 쉽지 않아요. 우리는 우리가 잘 하는 것만 할 겁니다. 다만 소비자들이 침대랑 다른 가구를 같이 사고싶어하기 때문에 소파 브랜드 자코모, 에싸를 매장에 입점시킨 거죠.”
▶3세 경영도 고려하시나요.
“저는 만 65세부터는 경영에서 손을 놓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두 아들 중 첫째가 2023년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8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슬슬 마무리해야죠. 저도 선친께 받았기 때문에 잘 넘겨줘야죠. 부동산 매입한 것도 팔든 매장을 내든 정리를 하고, 오래된 공조시스템이나 장 노후장비 교체도 하고 있어요.”
▶선친께서 강조한 경영철학은 무엇이었나요.
“생전에 늘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말라’고 강조하셨어요. 최고의 품질과 경쟁력을 갖춘 제품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확신하셨습니다. 그래서 현장과 깊이 이해하고 품질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제가 주 3일 공장에 가는 것도 선친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침대는 과학’이라는 카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당시 ‘옷장은 옷이 쓰고 책장은 책이 쓰는데 침대는 사람이 쓰니까 일반 가구와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1992년 에이스침대공학연구소를 설립했고 이를 잘 전달하자고 고민하던 중 광고대행사인 오리콤에서 이 카피를 제안했어요. 강력한 이 카피로 지금까지도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죠.”
▶동생(안정호 시몬스 사장)과는 자주 의견을 교환하시나요.
“2009년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가 가격 담합 혐의로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땐 선친께서 두 침대의 경영에 모두 관여하실 때였죠. 그 일을 계기로 저희 형제는 사업에서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어떠한 교류도 하지 않습니다.”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에이스침대를 누군가에게 잘 넘겨준 뒤에는 침대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하고 싶어요. 40년 넘게 했으면 충분하죠. 개인적으로는 유능한 젊은 친구들이 하는 일을 도와주는 엔젤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