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휴일이 내수를 진작하기는커녕 되레 수출만 갉아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약 24% 줄었다. 미국발 관세 영향도 있지만 그보다는 조업일수(실제로 일한 날) 단축이 더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5일 어린이날과 부처님오신날이 겹치면서 6일이 대체공휴일로 지정됐다. 그 결과 5월 초순 열흘 가운데 조업일수는 나흘에 그쳤다.
정부가 때때로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는 가장 큰 명분은 내수를 살리자는 데 있다. 지난 1월 설 연휴 때도 정부는 2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고, 그 덕에 근로자들은 엿새 황금연휴를 맞았다. 하지만 정부의 선의는 해외여행 급증, 국내 신용카드 사용액 감소라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벌써 10월 개천절·추석 연휴 때 하루(10일)만 임시공휴일로 정하면 열흘 연휴가 가능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영세상인들에게 임시공휴일은 말 그대로 공치는 날이다.
대체공휴일은 2014년 설·추석 연휴와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점차 확대됐다. 또 정부는 징검다리 연휴가 끼면 재량껏 임시공휴일을 지정했다. 이와 함께 2004년부터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됐고, 2018년부터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 시행 중이다. 그래도 한국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을 웃돈다. 따라서 노동시간을 더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문제는 타이밍과 속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4일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1.6%에서 0.8%로 반 토막냈다. 잠재성장률은 머잖아 0%대로 수렴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이처럼 경제는 장기침체 조짐이 뚜렷한데 정치권은 주 4.5일제, 나아가 주 4일제를 거론하며 ‘홀리데이 포퓰리즘’을 남발하고 있다. 동시에 유력 후보들은 너나없이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일할 시간을 강제로 줄이겠다면서 어떻게 AI 강국이 되겠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다리를 뻗으라고 했다. 지금은 흥청망청 놀 때가 아니다. 정부는 임시공휴일 남발을 자제하고, 정치권은 주 4.5일제 도입을 서둘러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