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16개 트랙의 앨범을 내는 것도 무모하고, 13년간 활동도 안 한 가수가 공연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는데요. 오늘 그 결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가워해 주시고, 제 음악을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수 이소은은 13년 만에 개최한 단독 콘서트 무대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이소은은 '오래오래', '서방님'으로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애절한 감성과 맞닿은 부드러운 목소리는 20여년 전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소녀의 모습을 단번에 소환해냈다. 관객들은 숨소리를 죽인 채 무대 위 이소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1998년 만 16세의 나이에 가수로 데뷔해 청아하면서도 감성적인 보컬로 큰 사랑을 받았던 이소은은 2005년 정규 4집을 끝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시카고의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에서 공부한 그는 뉴욕 소재 로펌에서 일하며 국제변호사의 꿈을 이뤘다.
'뉴욕 변호사'로 오랜 시간 살아온 이소은이 다시 가수로 복귀했다. 지난 7월 동시집 '나의 작은 거인에게'에 수록된 12편의 시를 음악으로 풀어낸 앨범 '이소은 시선 - 노트 온 어 포엠'을 발매하고, 단독 콘서트까지 열었다.
이소은은 "예전에 부르던 곡들이 나이를 먹고 새로운 경험을 축적한 뒤에 부르니 너무 다른 의미로 다가오더라"면서 "그동안 많은 시간을 거쳐오며 음악을 통해 팬분들과 같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소은의 말처럼 풋풋하고 앳된 감성이 살아 숨 쉬던 과거의 곡들은 한층 성숙하고 묵직한 감성으로 발전되어 있었다. '작별', '나예요', '부탁', '닮았잖아' 등의 곡을 부를 땐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오는 애절한 분위기가 관객들을 울렸다. 어딘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어린 화자의 심경이 어른이 된 이소은을 거치자 관객들에게 더 진한 공감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소은은 특별히 존 메이어의 '웨이팅 온 더 월드 투 체인지', 사라 바벨리스의 '매니 더 마일즈' 무대를 준비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공연의 백미는 새 앨범 '이소은 시선 - 노트 온 어 포엠'에 수록된 곡의 무대들이었다. 과거 발표곡들이 추억을 불러일으켰다면, 신곡들은 어른들에게 동심을 아로새기는 역할을 했다. 어른이 되어 읽는 동시는 어릴 때 읽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보이지 않았던 행간의 의미가 눈과 마음에 들어오면서 개인에서 나아가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최고의 감성 영역인 시와 음악이 만나 놀라울 정도의 울림을 준다. '롤빵', '예쁜 편지지를 봤어', '이름 쓰기', '씨앗', '등굣길', '여름의 사과가 말했다', '컴퍼스' 등 가사를 곱씹으면 마음이 더욱 풍성해지는 무대들이 잇달아 공개됐다. 객석에는 각 시의 원작자들인 시인들도 자리해 이소은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등굣길' 시에 등장하는 양일래 할머니도 자리를 빛냈다.
특히 '등굣길' 무대는 첼리스트 홍진호가 함께 꾸며 의미를 더했다. 묵직한 첼로의 선율이 양일래 할머니의 삶을 덤덤하게 전하는 느낌이라 감동을 안겼다. 홍진호는 발매를 앞둔 자작곡을 미리 공개하기도 했다. 성가에서 영감을 얻은 이 곡 역시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깊은 위로를 건넸다.
공연은 활기찬 분위기로 마무리됐다. 객석에서 우렁차게 터져 나온 앙코르 요청에 다시 무대로 나온 이소은은 히트곡 '키친'을 부른 데 이어 '점핑 소은'까지 소화하며 팬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공연을 마치며 그는 "제가 바람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지면서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 사랑해 주시고 서포트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제 13년은 안 걸리도록 하겠다. 그보다 간격을 줄여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