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4일 “금융기관이 10명 중 1명은 빚을 못 갚을 것으로 보고 9명한테 이자를 다 받고 있는데, 못 갚은 한 명을 끝까지 쫓아가서 받으면 부당이득”이라고 했다. 장기 연체 채권에 대한 금융권의 추심을 ‘부당이득’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충청의 마음을 듣다’를 주제로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금융기관이 빚을 갚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해 산정한 이자를 다 받았는데도 끝까지 쫓아가서 받으면 부당이득이 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지고 있는 악성 채무를 정부 차원에서 탕감해줄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 대통령은 장기 연체 채권에 대한 금융권의 추심을 “(상환을) 이중으로 받는 것”이라며 “이걸 정리해주는 게 형평성에 맞다”고 했다.
정부는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 채무를 탕감해주는 특별채무조정패키지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서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이 대통령은 “상환 능력이 되는데 7년 후면 탕감해줄지 모른다고 생각해 신용 불량자로 7년을 살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정상적으로 갚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깎아줄 생각”이라고 했다.
한 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 입장에서는 상환받지 못할 대출이 늘어난다고 판단해 가산금리를 더 올리는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 했다.
"자원 몰아서 성장하는 전략 한계…이제 균형발전 자리 잡아야"
이재명 대통령은 4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연 ‘충청권 타운홀 미팅’에서 상당 시간을 할애해 장기 연체된 소액 채무를 탕감해줘야하는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다. 채무 탕감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는 지적을 거론한 뒤 이를 반박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추가 채무조정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 “취약차주 채무, 정리해줘야”
이 대통령은 이날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부채 탕감’을 반영한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언급하며 “대전에 와서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것”이라며 운을 뗐다. 이 대통령은 취약차주 채무 탕감에 대해 “정리해 주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며 “7년간 빚을 못 갚아 신용 불량으로 경제 활동을 못하는 사람의 빚을 정리해 주지 말자고 하는 게 인도적 차원에서 바람직하냐”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을 고려한 발언도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코로나19 시기에 다른 나라 정부는 빚을 져 임대료, 고정비용 등을 보전해주는 급여보호프로그램(PPP) 정책 등을 실시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 빌려줘서, 개인에게 떠넘겨 자영업자 부담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상공인이 빚쟁이가 됐으니 정부가 이제 책임져야하지 않겠냐는 게 제 생각”이라고 말하자 좌중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추가로 대책을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했다. 국가 재정을 투입해 자영업자를 지원해주는 정책을 또 발표하겠다는 의미다.
이날 한 자영업자가 “이 대통령의 선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채무 조정과 개인 회생, 파산 제도가 있는 이유가 있지 않느냐”고 반론을 제기하자, 이 대통령은 “열심히 상환한 사람을 지원해줘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회는 기본적으로 연대”라며 이해를 구했다. 그러면서 “채권자 입장에선 장부에 써진 숫자에 불과하다”며 “신용 불량자로 경제 생활 못하는 사람을 그냥 두면 사회 경제적으로 비용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일자리를 창출해 자영업자 수를 줄여야 이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며 “스폰지처럼 실업자의 상당 부분이 자영업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자리와 기업을 늘리고 국민 전체의 소득이 올라야 근본적으로 해결될 길이 열린다”고 했다.
은행권은 채무 탕감을 당연시한 이 대통령 발언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10명 중 1명이 빚을 갚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9명에게 이자를 받는 것은 맞지만, 빚을 연체한 1명에게 끝까지 추심을 진행해 결국 회수하는 빚과 그 이자도 분명히 9명의 금리에 반영된다”며 “채무 탕감이 당연해지면 정상적으로 빚을 갚는 9명의 대출 금리가 오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李 “균형 발전 필요해”
이 대통령은 대기업과 수도권에 편중된 경제 성장 방식에 대해서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고도 성장기엔 성장을 위해 자원 배분이 한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며 “지역으로 보면 서울에 집중됐고, 기업으로 보면 몇몇 대기업을 골라 집중 육성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전세계 유례없이 압축 성장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지금은 한 쪽으로 (자원을) 몰아서 성장하는 전략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는 자원이 골고루 배분되는 ‘공정 경제’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작은 기업이든, 큰 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공평한 기회 속에 성장하고, 큰 기업도 부당하면 시장에서 퇴출되는 정상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부 특권화된 몇몇 집단 또는 사람의 지위도 해체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한재영/김형규/정의진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