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9일 “물가 문제가 우리 국민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기 있다”며 “현황과 가능한 대책이 뭐가 있을지 챙겨달라”고 내각과 참모들에게 당부했다. 정권 초 민생 안정을 위해 ‘먹거리 물가’ 잡기에 나서다는 해석이 나온다.
◇李, “물가 너무 올랐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비상경제점검태스크포스(TF) 2차 회의에서 “최근 물가가 엄청나게 많이 올랐다고 그러더라”며 “라면 한 개에 2000원(도) 한다는데 진짜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가공식품 위주로 눌러놨던 것들, 맥주나 라면 등(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걱정되는 부분이 계란하고 닭고기”라며 “브라질에서 순살 닭고기를 많이 수입하는데, 거기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잘못 대응하면 (가격이) 급등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없으니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라며 “다음 회의 전에라도 가능한 대책을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라면 가격까지 언급하며 물가 대책을 주문한 것은 작년 ‘12·3 계엄 사태’ 이후 가공식품 물가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가공식품 73개 중 50개의 소비자물가지수가 계엄 사태 직전인 11월보다 올랐다. 특히 초콜릿(10.4%), 커피(8.2%), 빵(6.3%), 라면(4.7%) 등은 작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전체 가공식품 물가상승률(2.7%)을 크게 웃돌았다. 지난달 전체 가공식품 물가상승률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년 새 4.1% 올랐다. 조류인플루엔자(AI) 영향으로 달걀 한 판(특란 30개) 평균 가격은 7000원을 넘어서며 약 4년만에 최고치다.
◇여당도 물가관리TF 구성
대통령실과 정부가 물가안정에 대한 대책 마련에 착수하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물가관리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정부를 지원하기로 했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선 전 차기 정부의 민생과제 1순위를 묻는 질문에 국민 열분 중 여섯분은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꼽았다”며 “당정 협의를 통해 국민이 민생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상승하는 먹거리 물가를 떨어뜨려 국민이 체감하는 민생 분야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라면값 2000원’을 놓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2000원짜리 라면은 프리미엄 제품군에 속하기 때문에 라면 전체를 대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라면값이 오르긴 했지만 대부분 제품은 대형마트에서 900원 안팎이면 살 수 있고, 상대적으로 비싼 편의점 판매가도 1000원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만일 일부 최상급 제품 가격이 전체 라면값을 대표하는 것처럼 대통령에게 보고가 됐다면 문제”라며 “아직 구체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은 만큼 정부와 기업이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참모진이 마련한다”고 말했다.
식품업계는 계엄 사태 이후 가격을 인상한 건 윤석열 정부가 식품값 오름세를 지나치게 통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팜유, 밀가루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른 데다 환율까지 상승해 원가 부담이 컸지만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정부가 물가 통제 전략으로 식품값 인상을 지나치게 억누르면 슈링크플레이션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에 국내 1위 라면기업인 농심 주가는 전일보다 4.64% 빠진 40만1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반면 해외 매출이 80%에 달하는 삼양식품 주가는 전날보다 0.53% 오르며 큰 영향이 없었다.
김형규/이광식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