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노래해야 하는 이유[내가 만난 명문장/정끝별]

3 weeks ago 8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기형도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

“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말라르메 ‘바다의 미풍’)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다만 육체가 슬퍼지는 나이가 되도록 않을 만큼 읽었으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내가 만난 명문장’들이었다. 그중 하나를 고르느라 뒤적이다 보면 번번이 이 문장으로 돌아오곤 했다. ‘미안하다’라는 양보의 부사절, ‘이제’라는 시간 부사, ‘희망’이라는 불굴의 명사. 이 세 단어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안의 젊은이’들은 “나이 스물에 마음은 벌써 늙어버”렸고(이하 ‘진상에게 드림’), 아이들이 사라져가는 거리에 노인들은 넘쳐난다. 당파로, 지역으로, 성(性)으로, 세대로, 연봉으로 갈라져 서로를 미워하고 폄훼한다.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김수영 ‘절망’), 갈 길은 갈수록 멀고 팍팍하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윤동주 ‘병원’)

설마 희망을? 아직 희망을? 또 희망을? 누군가는 희망이 절망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지지 않고 죽지 않았으니, 우리가 다시 희망을 노래해야 하는 이유다. 희망은 잘 보이지 않고 저절로 오지 않는다는 걸, 나의 희망이 때론 너의 절망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러니 희망은 씨앗인 듯 매일매일 키우고 아이 보듯 자세히 봐야 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기에.

이제 곧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이성복 ‘그 여름의 끝’)라고 말할 수 있는, 올여름의 끝을 꿈꿔 본다. 뙤약볕과 장마와 폭풍을 이겨낼 여름 끝의 백일홍을 그려본다. 불굴의 희망은 지루한 절망보다 한 뼘 더 큰 희망이다. 그러니 희망이여, 이제 우리의 노래를 타고 달려오시라!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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