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EA 2025' 서울서 개막
세계 최대 미디어아트 축제
예술의전당·서울대 등 곳곳서
강연과 전시·공연·영화 상영
현대사회 갈등 속 '연대' 강조
어둑어둑한 전시장이 기이한 소리와 몽환적인 빛으로 가득 찼다. 2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2전시실. 이른 아침부터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인공지능(AI)과 대화하듯 상호작용을 하는가 하면, 증강현실(AR) 기기를 쓴 채 수풀 사이를 헤매기도 했다. '소리 괴물'로 불리는 거대한 기기는 이따금씩 정형화되지 않은 굉음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한쪽엔 괴짜 생물학자의 실험실 같은 공간이 스산한 분위기를 냈다. 이들은 모두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아트 축제인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ISEA) 2025'에 출품된 미디어아트 작품들이다.
이날 ISEA 2025가 서울 일대에서 막을 올렸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ISEA는 문화·예술·과학·기술을 주제로 한 다학제적 논의의 장이자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어우러진 국제 미디어아트 축제다. 오는 29일까지 일주일간 예술의전당, 서울대, 서강대, 한강 일대에서 미디어아트 강연, 전시, 퍼포먼스, 스크리닝(영화 상영)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 초청작 79점을 포함해 세계 70여 개국에서 출품된 총 118점의 미디어 작품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기회로 눈길을 끈다.
이번 ISEA 2025의 주제는 '동동: 크리에이터들의 유니버스'다. 세계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포스트휴머니즘을 필두로 동양과 서양, 예술과 과학, 물질과 영성, 기술과 인간성 등 서로 이질적으로 여겨져온 것들의 융합을 탐구한다. 현대사회의 계속된 대립과 긴장 속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강조하는 연대는 인간 간의 연대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간의 연대까지 아우른다. 대만의 아티스트 듀오 신피지카(치아오치 추·요우양 후)의 혼합현실 설치 작품 '인공지능·크리처·다중우주'(2024-2025)가 대표적이다. 작가들은 다중 감각 식물이라는 가상의 생명체를 가정해 이들로 가득 찬 혼합현실 정원을 만들었다. 관객이 AR 기기를 쓰고 이들 식물에 다가서면 이 생명체는 마치 인간을 의식하듯 꽃가루 같은 작은 입자를 끊임없이 내뿜으며 생동한다.
최신 과학기술을 다각도로 접목한 작품들도 눈에 띈다. 양숙현 작가의 'OOX 2.0-지구물질인간존재도를 위한 어플리케이션'(2024)은 생성형 인공지능(AI) 기반의 거대언어모델과 각종 센서로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인터랙션 장치, 한국천문연구원의 API(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로 구현됐다. 개인의 생년월일을 동양 천문학 기반의 물질 데이터로 변환하고, 이를 생성형 AI로 시각화한다. 작품은 AI가 인간 정체성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탐구하는 동시에 물질 세계와 비물질 세계의 경계를 허문다.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UCSB) 트랜스랩 연구진은 최근 발표한 학술논문의 뇌과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의 뇌 오가노이드를 형상화한 설치 작품 '오가노이드_프로토노시스Ⅱ'(2024-2025)를 내놨다.
이번 ISEA 2025에서는 총 332건의 논문이 발표된다. AI, 인공생명, 디지털 사운드, 문화유산, 포스트 휴머니즘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패널 토론과 아티스트 토크에 세계 각국의 학자 400여 명이 참석한다. 김윤철 작가와 심상용 서울대미술관 관장, 뉴미디어 이론가 레브 마노비치의 기조연설도 기대를 모은다.
한편 23일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는 ISEA 개막을 기념해 한강 수상에서 특별한 이벤트가 펼쳐졌다. 관객이 손을 맞잡으면 강물이 빛으로 물들여 연대의 힘을 미디어아트로 구현한 사일로랩의 퍼포먼스 작품 '윤슬'을 선보였다.
[송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