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프레소-153] 영화 ‘히든 피겨스’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브레인이 모였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히든 피겨스’(2016)는 지성인의 공간이라는 그곳에 존재했던 몰상식한 차별을 폭로한다. 능력을 입증받기 전까지 대놓고 배제됐던 흑인 여성 셋을 통해서다. 이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에서 무려 60년이나 지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전하는 바가 많다. 그건 비단 우리가 점점 인종 다양성을 갖추며 곳곳에서 인종 간 충돌을 일으키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어쩌면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인종과 성차별을 전혀 하지 않는’ 당신을 향한 것일지 모른다.
우리 팀 이름은 ‘유색인종 계산팀’
먼저 이 영화의 특징을 간략히 살펴보자. 이 작품은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등 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나사에 들어가 미국이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승기를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실화를 담았다. 일종의 ‘인간 승리’를 조명한 작품인데 뻔하게 흘러가기 쉬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관객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다. 그건 뻔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할리우드 영화의 강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품은 관객에게 일종의 자기소개를 하는 ‘도입부’에 운전 신(scene)을 담았다. 세 사람이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경찰이 불러 세운 것이다. ‘히든 피겨스’ 외에도 인종차별을 다룬 미국의 영화에선 차도 배경이 자주 등장하는데, 미국에서 도로는 소수 인종이 차별을 빈번하게 경험하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례로 흑인 남자친구가 백인 여자친구 고향에 놀러 가며 겪는 끔찍한 일을 다룬 공포영화 ‘겟아웃’에서는 여자친구가 운전했음에도 경찰이 남자의 신분증을 요구하며 생기는 해프닝이 담긴다. 또 다른 인종차별 소재 영화 ‘그린북’은 흑인들이 인종차별 걱정 없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의 리스트를 담은 책 그린북을 소재로 했다.
‘히든 피겨스’에서는 주인공들을 불러 세웠던 경찰이 이들이 나사 소속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에스코트해주는 장면이 담긴다. 이건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주는데, 하나는 당시의 미국은 흑인이 맘 편히 운전하기도 어려울 만큼 인종차별이 심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미국은 능력 있는 자는 대우한다는 점이다. 세 주인공이 인종차별의 벽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결국 능력 있는 개인을 우대하는 미국에서 성공했을 것임을 암시하는 장치다.
세 사람은 나사의 ‘유색인종 계산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다 캐서린은 해석기하학 능력자로 인정받아 계산 검토원으로 발탁되고, 메리는 엔지니어팀으로 발탁된다. 그러나 캐서린은 새롭게 일하게 된 공간에 ‘유색인종 화장실’이 없어서 매일 원래 근무하던 사무실의 ‘유색인종 화장실’로 뛰어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메리는 엔지니어가 되려면 백인만 갈 수 있는 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황당한 요구를 받는다. 하늘 높은 곳에서 찬연히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일하는 나사이지만, 그 안에는 구시대적인 악습이 가득했던 셈이다.
진정한 차별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이뤄진다
각종 차별에도 꿋꿋이 자기 역할을 수행해낸 세 사람 덕분에 나사는 우주 개발에서 소련에 한 발짝 앞서 나가게 됐다. 영화에는 이들이 직업적으로 성취를 거두는 모습을 담음과 동시에 인종과 성의 장벽을 넘어서는 장면도 비춘다.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임시직으로 머물던 도로시는 주임으로 정식 임명되고, 메리는 판결을 통해 백인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미국은 이들의 업적을 기려 2019년 미국에서 가장 영예로운 훈장으로 꼽히는 ‘골드 메달’을 수여한다. 2020년엔 미국 나사가 메리의 공을 평가하며 워싱턴DC 본부 명칭을 ‘메리 W. 잭슨 헤드쿼터’로 변경하기도 했다.
‘히든 피겨스’는 불굴의 의지를 지닌 세 사람의 감동 실화로 즐기기에 무리 없는 웰메이드 오락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역할도 한다. 그건 바로 차별에 완전히 무감각한 작품 속 백인들을 통해서다. 이들은 흑인인 세 주인공에게 별도의 화장실을 쓰게 하고, 유색인종 전용 커피포트를 사용하게 하지만 거기엔 악의가 없다. 그것은 그저 이들의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대부분 ‘별 뜻 없이’ 차별을 행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차별이라고 인지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상식을 지닌 당신은 차별에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우리가 저지르는 심각한 차별 중 상당수는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이뤄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60년쯤 지나 우리를 담은 영화 속에서 관객들이 ‘참 야만적인 시대였다’고 평가할 만한 부분은 없을지, 계속해서 반성해야 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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