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6일 프랑스 파리. 전날 내린 눈이 쌓인 차가운 날씨에도 옥동식 매장 앞은 개점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이례적인 폭설에도 대기줄이 추위를 뚫고 골목 끝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문을 연 이곳은 한국인 방문객 사이의 열기를 시작으로, 이제 막 파리 현지 미식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저변을 넓히기 시작했다.
대기 줄에서 만난 이탈리아 출신 헤어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카를로토 씨는 “근처를 걷다 '흑백요리사' 포스터와 식당 안에서 일하는 옥동식 셰프를 발견했다”며 “휴가를 끝내고 밀라노로 돌아가기 전에 방송에서 봤던 돼지 곰탕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미리 와서 줄을 섰다”고 말했다. K-콘텐츠의 화제성이 국경을 넘어 오프라인 매장의 실질적인 유입 동력으로 작용하는 생생한 현장이다. 2017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작은 주방에서 시작한 옥동식의 돼지곰탕은 뉴욕을 거쳐 이제 유럽 미식의 중심인 파리에 자리를 잡았다.
매장이 위치한 곳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인근으로, 전통적으로 한식당과 일식당이 밀집한 지역이다. 세계적인 미슐랭 2스타 셰프 기 사부아(Guy Savoy)의 딸이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장소에 20석 규모의 매장을 열었다. 파리 지점도 서울 서교동 본점처럼 메뉴, 공간 구성, 접객 방식까지 모두 단순하고 간결함을 유지한다.
돼지곰탕 한 그릇은 15유로. 파리지앵들이 즐겨 찾는 쌀국수나 라멘 가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설정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데일리 메뉴'로 포지셔닝했다. 주류는 맥주와 생강으로 발효한 소주를 잔으로 판매하고, 디저트로는 팥빙수의 구성을 재해석해 달콤한 팥 고명을 얹은 쌀 푸딩을 선보인다.
옥 셰프는 “파리 매장 오픈은 요리사로서 마지막 꿈이었다”며 “미식의 본고장에서 제 음식을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깊은 의미”라며 소회를 밝혔다.
오픈 초기에는 연말 휴가를 떠난 현지인들 대신 한국인 고객이 주를 이뤘으나, 새해를 기점으로 현지인 비율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옥 셰프는 뉴욕 매장도 같은 순서였다고 했다. “뉴욕에서도 한국인, 중국인, 현지인 순으로 고객층이 확장됐다”며 “한국 콘텐츠 소비가 많은 중화권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이 먼저 나고, 이후 현지인 유입이 늘어난다. 파리 역시 그런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흑백요리사 팀전, ‘흑화된 빌런’이라는 얘기 많이 들었죠
최근 방영된 ‘흑백요리사’에서 불거진 팀전 논란에 대해서도 옥 셰프는 숨김없이 속내를 털어놨다. 인터뷰 도중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려던 기자에게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제가 빌런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죠. 선재스님하고 경연까지 잘 왔다가 ‘흑화된 빌런’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팀전에서의 판단 착오를 담백하게 시인했다. “팀전에서는 제 실수가 있었어요. 2라운드 참외 소스에 깨를 넣었던 부분은 팀을 서포트하려던 마음이 앞서서 스스로 중심을 잘 못 잡았던 탓이에요. 3라운드 깐풍기 소스도 옛날부터 쓰던 레시피가 있는데 그날따라 간장을 너무 많이 넣어버렸어요. 만들고 나서 ‘내가 미쳤나’ 싶더라고요. 중식마녀님이 짜다고 말씀하셨을 때 큰일 났다 싶었는데, 그분이 많이 커버해 주셨죠.”
글로벌 확장으로 현장 감각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에는 오랜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여유로 답했다. “어릴 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사람이 어른이 됐다고 잊어버리지는 않잖아요. 몇십 년을 요리했는데 그 감각이 어디 가겠습니까? 방송에 나간 건 제가 ‘돼지곰탕만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생각하실까 봐 그런 인식을 좀 벗어나고 싶었어요. 앞으로 보여드릴 요리가 훨씬 많습니다.”
성공의 정의 “돈이 아니라 단일 메뉴로 세계를 연 자부심”
글로벌 수혜로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렸을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파리는 임대료와 세금이 매우 높아 비즈니스 환경이 만만치 않습니다. 뉴욕 수익은 현지 생활비로 나가고, 한국 매장 수익은 꼬박꼬박 저축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는 다른 의미에서의 ‘성공’은 기꺼이 인정했다. “물질적인 부분을 빼고 나면, 저는 분명 성공했습니다. 사실 돼지곰탕이라는 이 메뉴 하나를 가지고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매장을 오픈한 경우는 유례가 없거든요. 그 사실만으로도 요리사로서 너무나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그는 이제 사업가가 아닌 셰프로서의 역할에 더 집중하고 싶어 했다. 비즈니스는 뉴욕의 ‘핸드 호스피탈리티(HAND Hospitality)’가 맡고, 본인은 메뉴 개발과 직원 교육을 책임지는 구조다. “돈에 대한 목표는 없습니다. 장사가 잘되고 나서 제가 느낀 건, 식당에 가서 가격표 고민 없이 먹고 싶은 걸 고를 수 있는 지금의 삶이면 충분하다는 거예요.”
5년 뒤의 옥동식, ‘한국식 채식’으로 한식의 정수를 꿈꾸다
그의 다음 시선은 ‘채식’으로 향한다. 이미 매장에서는 비건 수요를 겨냥한 버섯 곰탕을 선보이고 있다. 사찰 음식의 기법을 응용해 들기름에 뿌리채소를 볶아 깊은 감칠맛을 낸 채수(菜水)가 비결이다.
“한식이 잠깐의 흥행을 넘어 세계 속에 주역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어요. 해외에 나가면 한식이 변형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현지 재료로 제대로 된 한식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혼자 조그맣게 뉴욕에서 제대로 된 한국식 채식을 한번 보여주고 싶어요.”
그는 핸드 호스피탈리티와 파트너십을 맺은 셰프들과 함께 직접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작년부터는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채식의 기본은 결국 ‘장’입니다. 파리 오픈을 마치고 뉴욕에 돌아가면 올해는 메주를 대량으로 담글 예정입니다. 5년 정도 정성을 들이면 제가 원하는 형태의 장이 나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제대로 된 한국식 채식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파리에서 라멘과 쌀국수집에 길게 줄을 선 풍경은 익숙하다. 하지만 이제 그 대열에 옥동식의 돼지곰탕이 합류했다. 화려한 수사 없이도 맑고 명료한 국물처럼, 옥동식 셰프 역시 한식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파리=김인애 럭셔리&컬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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