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인상 추진 배경엔 고질적인 경영 악화가 있다. KBS의 지난해 사업 손익 적자는 881억 원으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기록(935억 원)을 제외하면 역대 최대 규모다. 이에 전체 수입의 49%를 차지하는 수신료를 올려 경영난을 덜어보겠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KBS 수신료 수입은 6516억 원. 수신료가 3000원으로 20% 인상되면 수신료로만 한 해 1300억 원 이상의 추가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자구 노력 없이 준조세나 다름없는 수신료를 더 걷어 경영난을 해결하려는 계획은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박 사장은 올 3월 “현재 5248명인 KBS 정원을 20% 감축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시행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역대 사장들도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면서 대대적인 감원을 공언했지만 KBS의 인건비 비중은 32%로 MBC(23%)나 SBS(16%)보다 훨씬 높다(2023년 기준). 수신료 인상이 국회 최종 승인 단계에서 번번이 무산됐던 이유다.
▷더구나 올 4월 여당 주도로 수신료를 예전처럼 전기요금에 합쳐 내도록 방송법이 개정돼 KBS로서는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상태다. 지난 정부가 공영방송 실패에 수신료 납부 거부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며 분리 징수제를 시행했으나 다시 통합징수제로 돌아간 것. KBS로서는 이것만도 큰 혜택인데 불황 국면에 수신료 인상까지 꺼내자 사내에서도 “여론 수렴 않고 성급하다”거나 ‘파우치 사장’의 흑역사를 언급하며 “편파 방송에 대한 반성이 먼저”라는 비판이 나온다.▷국내에선 20년 가까이 수신료 인상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해외에선 공영방송 무용론이 제기된 지 오래다. 공영방송 의존도가 높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유료 방송에 넷플릭스, 유튜브까지 수많은 채널이 존재한다. 1만 원 넘는 넷플릭스 구독료는 기꺼이 내도 공영방송 수신료 지불의사액은 2006년 3775원에서 가장 최근 조사인 2019년엔 1667.45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일본 NHK가 수신료를 내리고 영국 BBC가 2년 후 수신료 폐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이유다. 지금은 수신료 인상이 아니라 제구실 못 하는 다수의 공영방송을 언제까지 공적 재원으로 유지해야 하나 검토할 때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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