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은 최근 국토부가 입찰공고에서 내건 ‘공사 기간 7년’ 조건을 2년 초과한 9년짜리 기본설계 계획을 제출했다. 공사의 극심한 난도를 고려할 때 도저히 7년 만에 공사를 마칠 수 없다는 내용의 상세한 사유서도 첨부했다. 국토부의 보완 요구에도 현대건설은 불가 방침을 재확인했다. 4차례 유찰 끝에 떠안다시피 정부와 수의계약을 맺었던 국내 건설업계의 맏형이 사실상 공사를 포기한 셈이다.
▷건설업계에선 “충분히 예상된 일”이란 평가가 나온다. 가덕신공항 예정지의 절반 이상은 바다를 매립해 조성해야 한다. 서울 남산의 3배 규모 산봉우리를 발파해 나오는 2억 m³ 이상의 돌, 흙으로 바다를 메워야 한다. 1단계 공사에 9년이 걸린 인천공항에 비해 가덕도 앞바다는 수심이 훨씬 깊고, 지반도 점토질이어서 더 무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땅을 다지지 못하면 육지와 매립지 사이에 ‘부등침하’(지반이 불균등하게 내려앉는 현상)가 발생할 수 있다. 나중에 활주로 일부가 내려앉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공사업체는 감당 못 할 책임을 져야 한다.
▷가덕신공항은 ‘정치로 시작돼 정치 때문에 꼬인’ 국책사업이다. 노무현 정부 때 동남권 신공항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됐지만 이명박 정부가 백지화했고, 박근혜 정부는 해외 공항 전문 엔지니어링 업체의 연구용역을 받아 김해공항 확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앞서 가덕신공항에 무게를 실었고, 야당이 동조해 가덕신공항 특별법이 제정됐다. 엑스포를 의식한 윤 정부는 2035년이던 개항 시점을 5년 넘게 앞당겼다.▷현대건설은 이미 46년 전에 ‘20세기 최대 역사(役事)’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항을 건설한 업체다. 세계 1, 2위 마천루인 ‘부르즈 할리파’, ‘메르데카118’도 한국 기업이 세웠다. 불가능에 가깝다는 세계적 난공사를 도맡아 해결해 온 우리 건설업체들이 10조5000억 원짜리 국내 공사를 못 하겠다며 두 손, 두 발 다 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설계 단계에서 차질이 빚어지면서 2029년 개항은 이미 어려워졌다. ‘안전한 공항’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현실적인 스케줄을 다시 짜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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