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가결한 이후 영국 총리직은 ‘독이 든 성배’가 됐다. 국민투표에 부쳤던 데이비드 캐머런은 곧장 사퇴했고, 후임 테리사 메이는 유럽연합(EU)과의 이혼 합의서를 들고 의회와 씨름만 하다 2019년 물러났다. ‘브렉시트 완수’를 외치며 등장한 보리스 존슨은 파티 게이트와 거짓말 논란 끝에 2022년 사퇴했다. 압권은 리즈 트러스였다. 대책 없이 대규모 감세안을 던졌다가 44일 만에 물러나 영국 최단명 총리의 오명을 썼다. 영국 최초의 인도계 총리 리시 수낵도, 14년 만에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 스타머 총리도 브렉시트의 멍에를 극복하지 못했다.
▷브렉시트는 보수당 내부의 계파 갈등과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결합해 낳은 ‘실패한 기획’이었다. 당내 강경파들을 달래고 정치적 입지를 다진다는 계산으로 캐머런 총리가 국민투표의 승부수를 던졌는데, 판이 열리자 선동이 활개를 쳤다. 나중에 총리가 되는 보리스 존슨 당시 런던 시장이 이끈 EU 탈퇴파는 빨간 버스에 “우리는 EU에 매주 3억5000만 파운드를 보내고 있다”는 문구를 내걸고 영국 전역을 돌았다. 이후 거짓 뉴스로 밝혀졌지만 복잡한 진실은 가려졌고, ‘통제권을 되찾자’는 감성적 구호가 표심을 낚아챘다.
▷‘브렉시트 10년’을 맞은 영국의 현실은 암울하다. 통상·규제 정책의 자율성을 찾았지만 저성장, 무역 감소, 이민 증가, 정치적 혼란 등 잃어버린 것이 훨씬 많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브렉시트로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6∼8% 깎였고, 투자도 EU에 잔류했을 때 예상치보다 12∼18%나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영국인 56%가 “EU 재가입을 원한다”고 답할 정도로 후회만 남았다.▷핵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다. 10년 전 영국인들은 “경제가 힘드니 지긋지긋한 EU를 벗어나자”고 외쳤고,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 제발 EU로 돌아가자”고 한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포퓰리즘 처방은 결국 더 큰 화를 부를 뿐이다. 신중해야 할 국가 대사를 광장 여론의 도박판에 무책임하게 던져버릴 때, 한 국가가 어떻게 길을 잃을 수 있는지 영국이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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