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최근 글로벌 기술시장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피지컬 인공지능(AI)'이다. 세계경제포럼과 가트너도 역시 피지컬 AI를 올해의 핵심전략기술이자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선정했다. 우리 정부 역시 최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제시하며 2030년 글로벌 선도국가 도약을 목표로 육성에 나섰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처럼 걷고 일하는 모습은 미래 산업에 대한 기대를 키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가트너는 2028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을 제조·물류 등 산업 현장에 안정적으로 적용하는 기업이 전 세계 20개사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술의 미성숙과 기존 산업 시스템과의 복잡한 연계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결국 피지컬 AI 시대의 경쟁력은 개별 기업의 뛰어난 하드웨어만(HW)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UC 버클리의 로봇공학자 캔 골드버그 교수는 AI모델은 10만년 분량의 인간 경험을 담아 학습을 했지만 로봇 데이터 셋은 1년치 분량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리적 환경에서 로봇이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며 데이터를 하나 하나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훈련 데이터의 절대적 양의 부족 문제와 아울러 서로 다른 기술과 시스템을 안전하게 연결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표준' 제정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미국 버지니아공대의 최고정보보안책임자(CISO) 랜디 마카니도 “로봇도 인간처럼 학교에 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통의 규범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교과서가 바로 표준이다. 최근 중국이 항저우에 '로봇 학교'를 설립해 교육과 인증 체계를 구축한 것도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미래 산업의 규칙을 선점하려는 전략적 행보다.
국제표준을 완성하고 시장에 안착시키는 힘은 개방형 생태계에서 나온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핵심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전 세계 개발자와 기업을 참여시켜 사실상의 국제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플랫폼과 생태계를 선점한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다.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의 피지컬 AI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다른 나라가 만든 표준 안에서만 활용된다면 진정한 주도권은 확보할 수 없다. 세계 최고의 애플리케이션도 남이 만든 운영체계에서만 작동한다면 시장의 주도권은 운영체계에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시기에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출연연은 특정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산업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공공 플랫폼이다. 기업이 단독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안전성 검증체계를 구축하고, 기술의 파편화를 막으며, 중소·중견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국제표준 기반을 마련하는 일은 출연연이 수행해야 할 국가 임무다. 피지컬 AI의 HW가 '몸'이라면, 이를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는 표준은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이미 의미 있는 경험이 있다. 출연연을 중심으로 산·학·연이 협력해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데이터 품질 국제표준(ISO/IEC 5259)' 제정을 이끌어낸 바 있다. 기술을 국제표준화하고 개방형 협력을 통해 글로벌 시장의 기준을 만들어 본 경험은 앞으로 피지컬 AI 시대에도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제 피지컬 AI 연구개발은 기획 단계부터 국제표준 전략과 함께 추진돼야 한다. 출연연은 원천기술을 시장에서 통용되는 국제표준으로 발전시키는 표준화의 허브가 돼 산·학·연·관의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개방형 생태계를 주도하고 국제표준을 선점하는 나라가 세계 시장의 규칙을 설계하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골든타임은 길지 않다. 대한민국이 피지컬 AI 세계 시장의 룰을 만드는 퍼스트무버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
박세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sbahk@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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