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승련]“선물 많이 받아 쌀 안 사봤다” 염장 질러 퇴출된 日 장관

2 weeks ago 13

“집에 (선물)받은 쌀이 많다”는 황당 발언을 한 에토 다쿠 일본 농림수산상이 결국 21일 사실상 경질됐다. 에토 전 장관이 18일 자민당 모금행사 때 “저는 쌀을 산 적이 없다. 지원자분들이 쌀을 많이 주신다. 집에 팔 정도로 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지 사흘 만이다. 일본은 1년 새 쌀값이 2배로 뛰었다. 식당 덮밥, 편의점 삼각김밥, 일본술까지 줄줄이 가격이 올라 소비자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쌀 생산은 줄지 않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유통량이 늘지 않은 것이 이유라고 한다.

▷일 정부가 비축미까지 풀었지만 5kg에 4만∼5만 원 정도로 한국보다 2배 높게 형성된 쌀값은 요지부동이다. 이런 상황에서 쌀값 안정을 책임진 주무 장관이 그런 발언을 했으니 민심이 폭발했다. 미국이 “일본은 쌀값에 관세를 700%나 붙인다”고 할 정도로 일본에서 쌀은 단순 농산물이 아니다. 8선 의원인 에토 전 장관은 이른바 ‘농림족’ 정치인으로, 농림수산상만 2번째 맡았다. 그런 그가 쌀을 소재로 무신경한 발언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궁금한 것은 ‘민심이 두렵다’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이렇게 발언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에토 전 장관의 배경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 에토는 세습 정치인이다. 그의 아버지 역시 같은 규슈섬 남쪽 미야자키현 농촌 지역을 낀 지역구에서 10선 의원을 지냈다. 1969년 이후 미야자키 선거는 이들 부자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별다른 경쟁 없이 반복 당선되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졌고, 결국 “집에 쌀이 넘쳐난다”고 태연하게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둔 탓이겠지만, 그래도 일본에선 물의를 빚은 장관을 경질했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선 말실수 정도로 장관을 교체하는 일은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 피해가 급증했던 지난해 “젊은이들이 (집을) 덜렁덜렁 계약했다”고 해 분노를 자아냈다. 그러나 사과만 했을 뿐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인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 직후 “경찰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해 공분을 자아냈다. 안전 담당 장관인 그를 문책하는 것이 순리라고 대다수가 여겼지만, 그는 자리를 지켰다.

▷문재인 정부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박원순 시장 추문 사건 때 “온 국민이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 학습할 기회가 됐다”고 했다가 당시 여당 내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즉각 교체는 없었다. 여야 정치싸움이 거세지면서 권력 핵심부에선 “야당에 밀리면 안 된다”는 논리가 압도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에토를 경질하면서 당연한 해야 할 발언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는 “모두 임명권자인 저의 책임”이라고 했다.

횡설수설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딥다이브

  • 글로벌 이슈

    글로벌 이슈

  • 이호 기자의 마켓ON

    이호 기자의 마켓ON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