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감정 노동·정치적 조율 못해
인간적 절차인 관료주의 오히려 강화
사회적 지능·인간관계 스킬 중요해져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 댄 서크는 현재 두 개 기업의 마케팅 최고 책임자(CMO)를 동시에 맡고 있는 이른바 ‘프랙셔널 익제큐티브(Fractional Executive)’다. 과거라면 불가능했을 이 ‘문어발식’ 경영이 가능해진 것은 클로드, 제미나이,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 덕분이다.
과거 외부 업체들과 팀을 꾸려 6개월 넘게 걸리던 웹사이트 구축 작업은 이제 AI를 활용해 혼자서 한 달 만에 끝낸다. 일주일이 소요되던 메시징 전략 수립은 단 8시간으로 단축됐다.
기술적 효율성만 따진다면 그는 네 곳, 다섯 곳의 회사도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세 곳이 한계”라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인간관계’와 ‘회의’ 때문이다. 서크의 사례는 현대 화이트칼라 노동이 직면한 거대한 변화를 상징한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간) AI가 실무 작업의 속도를 수십 배 높였지만, 그 결과물을 결정하고, 조율하고, 승인받는 ‘인간적 절차’인 관료주의적 요구사항은 자동화의 영역 밖에서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데밍은 이미 2017년에 “컴퓨터 성능이 향상될수록 사회적 상호작용이 필요한 직업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술적 숙련도가 필요한 업무는 기계가 대체하지만, 타인을 설득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업무는 인간의 영역으로 남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업 현장에서는 이러한 패턴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데이터 과학 분야에서 과거엔 코딩 실력이 핵심이었으나, 이제 코딩은 AI가 한다. 면접의 핵심은 “이 아이디어가 좋은지 판단할 수 있는가”와 “동료들을 설득해 실행에 옮길 수 있는가”로 옮겨갔다.
컨설팅 분야에서도 KPMG와 같은 글로벌 컨설팅사는 이제 특정 기술 전문가보다 ‘인간관계의 달인’을 원한다. 고객의 취향이 수치 중심인지, 아니면 감성적 스토리텔링 중심인지 파악해 최적의 방식으로 제안서를 ‘파는’ 능력이 전문 지식보다 높은 대접을 받는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변화가 극심한 편이다. 보험증권을 발행하도록 돕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폴리플라이(PolicyFly)는 AI 도입 후 고객 온보딩(고객별 맞춤 설정) 시간을 6개월에서 2주로 줄였다. 하지만 늘어난 여유 시간은 감원으로 이어지는 대신 ‘고객 성공(Customer Success)’ 담당자의 충원으로 이어졌다. 고객은 시스템이 완벽하다는 ‘기계적 증명’보다, 인간 전문가가 주는 ‘심리적 확신’을 원하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노동자가 살아남는 전략은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다운 면모를 강화하는 것이다. 세일즈포스의 한 직원은 자신이 AI로 대체될 것을 우려해 고객과 더욱 ‘끈적한(Sticky)’ 관계를 맺는 데 집중한다. 이메일과 텍스트 너머의 개인적인 고충을 들어주고, 해고의 공포를 느끼는 고객에게 감정적 지지를 보내는 식이다.
이러한 ‘감정 노동’과 ‘정치적 조율’은 단순히 친절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힌 조직 내에서 합의를 끌어내고, 복잡한 정보 속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스토리를 추출해내는 고차원적인 사회적 지능이다. AI가 더 많은 메모와 전략 보고서를 쏟아낼수록, 그중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최종 결정권자’ 주위에는 더 많은 로비와 설득, 그리고 회의가 몰리게 된다.
과거의 화이트칼라 업무가 ‘정보를 수집하고 가공하여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었다면, AI 시대의 업무는 ‘만들어진 결과물을 인간 사회 속에 안착시키는 것’으로 변모하고 있다.
기술적 하드스킬의 가치는 하락하고, 공감, 설득, 협상, 그리고 관계 구축으로 대변되는 소프트스킬이 새로운 화폐가 되었다고 NYT는 분석했다. AI는 우리에게 업무 시간을 줄여주었지만, 그 남은 시간은 더 많은 회의와 더 깊은 인간적 상호작용으로 채워질 운명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미래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전화기를 귀에 달고 살며, 모두의 최선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인간성 그 자체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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