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키우려면 합당한 월급 줘야한다”…최악의 위기서 환생한 日기업의 철학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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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사카 요시후미 지음 / 정현옥 옮김 / 워터베어프레스 펴냄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제철 본사에 설치된 일본제철 로고. [로이터 = 연합뉴스]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제철 본사에 설치된 일본제철 로고. [로이터 = 연합뉴스]

“여러분은 자식이나 손주 등에 업힌 노인처럼, 본인들 힘으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9년 7월 하시모토 에이지 당시 일본제철 사장은 취임한 지 얼마 안돼 나고야제철소를 방문했다. 간부들을 모아놓고 그는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나고야는 적자입니다. 상식이나 관례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무언가를 희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위기의식을 일깨운 그의 발언은 시의적절했다. 일본의 최대 철강 기업은 2018년부터 적자의 수렁에 빠졌고 2019년 3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실적이 4300억엔(4조3234억원) 적자였다. 역대 최악의 실적이었다.

앞서 하시모토 사장은 부사장 시절에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근본적인 개혁을 합니까? 이대로 가면 파산입니다”라고 절박함을 호소했던 사내 개혁파였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베테랑 기자인 우에사카 요시후미가 쓴 신간 ‘일본제철의 환생’은 일본제철이 위기 속에서 어떻게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하며 다시 일어섰는지를 생생하게 펼쳐보인다. 강력한 리더십이 뒷받침된다면 ‘올드 이코노미’도 얼마든지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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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철은 1901년 야하타제철소에서 출발해 후지제철과 합병, 2012년 스미토모금속공업과 통합을 거치며 일본 최대 철강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제철소의 근본적인 문제에 손을 대지 않은 채 생산 규모를 유지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영업은 생산량 유지를 위해 저가 판매에 집중했다. ‘계획은 일류, 실행은 이류, 변명은 초일류’라는 자조적인 기업문화도 판을 쳤다.

하시모토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16개 제철소를 순회하며 현장에서 답을 찾았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제철소 방문 횟수가 연간 30회가 넘었다. 공급과잉과 고비용 구조를 들여다본 것이다. 2021년 3월 충격적인 구조개혁안을 발표했다. 노후화된 고로 5기를 폐쇄해 10기로 줄이고, 6개 제철소 총 32라인에 대해 휴·폐지를 결정했다. 협력사를 포함해 1만명 규모의 인원 감축과 조강생산량 20% 감축이라는 역대급 규모의 과감한 개혁이었다.

어느 고로를 폐쇄해야 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치는 끼어들지 못했다. 오로지 논리와 수치에 따른 강단 있는 결단이었다. 단순한 감량 경영이 아닌 탈탄소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 경쟁력 있는 설비는 남겨 놓는 10~20년 후에 내다본 생존 전략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시모토 사장이 나고야제철소를 처음 방문한 지 1000일 후인 2022년 5월 일본제철은 극적인 V자형 회복을 달성했다. 2년 만에 다시 흑자를 쏘아올린 것이다. 매출액에 상당하는 매출수익은 전년 대비 41% 증가한 6조8088억엔을, 본업에서 얻은 이익을 가리키는 사업이익은 동기 대비 8.5배인 9391억엔이었다.

일본제철의 기적 같은 부활엔 수익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친 영향도 있었다. 당시 주요 고객사와의 사전 협상을 통해 저가로 공급하는 ‘히모츠키’ 관행은 수익성을 갉아먹는 암적 존재였다.

하시모토 사장은 2021년 5월 “히모츠키 거래는 국제적으로도 비합리적이라 할 만큼 가격이 낮게 설정돼서 시정하지 않으면 안정적 공급을 책임지지 못한다”며 ‘가격 인상 없으면 공급 중단’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는 영업부장들에게 “가격 인상으로 거래 수량이 줄어 시장 점유율을 빼앗긴다고 해도 상관없다. 내가 책임진다”고 독려했다. 결국 서서히 가격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일본제철은 공격적인 해외 인수·합병(M&A)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미국과 인도를 비롯한 전 세계 각국에서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 무역주의가 고개를 드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인도에서 에사르 철강을 인수하고 태국 전기로 공장을 확장한 데 이어 2023년에는 미국의 철강회사 US스틸을 141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 인수건은 제조업 부활을 외치는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빌미로 제동을 건 상태다.

책 마지막에는 하시모토 사장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사원의 급여 인상’을 경영의 최우선 지표로 삼았다는 고백이 인상적이다. 실제 2022년 3월 결산에서 직원 상여금은 14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는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회사를 꾸준히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월급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울어가는 한국 제조업의 현실에 비춰볼 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선제적인 기술 투자와 근본적 개혁, 조직문화 혁신이야말로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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