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환자 5년 생존율 96%.’ 서울아산병원 유방암센터의 성과다. 이 센터를 찾은 유방암 환자 대다수가 장기 생존했다는 의미다. 국내 평균인 94.3%, 미국 90.8% 등을 넘어 세계 최고 성적이다.
손병호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사진)는 이 병원의 유방암센터를 이끄는 소장 역할을 맡고 있다. 2003년부터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하면서 2006년 국내 첫 다학제 통합진료 시작을 함께 했다. 유방암 환자 커뮤니티마다 늘 이름이 등장하는 ‘환자들이 찾는’ 명의다. 국내 최고 유방암센터를 지휘하는 책임교수지만 높은 치료 성적의 비결을 묻자 그는 동료 의료진에 공을 돌렸다. 손 교수는 “그동안 진료 의사들의 많은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치료 시스템 면에선 최고 반열에 올랐다”며 “항암제 치료를 하는 종양내과와 수술하는 외과 의사 간 면밀히 소통하며 진료하는 게 최고 성적의 비결”이라고 했다.
◇환자에게 노래 선물하는 외과 의사
손 교수는 수술방에선 깐깐한 ‘완벽주의’지만 유방암 환자들의 웃음을 위해 ‘노래 선물’도 마다하지 않는 외과 의사다. 국내 유방암 환자 99%는 여성이다. 중년 이후 여성이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우울감과 상실감 등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 극심한 우울감이 환자 치료 성적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의미다.
손 교수는 이런 환자들에게 유방암을 바로 알리고 치료를 돕기 위해 수시로 환자 모임을 연다. 후배들과 함께하는 연말 송년 모임에선 메스 대신 마이크를 들고 환자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여성성의 상징 같은 가슴을 잃고 허망함에 빠져 있는 환자들의 빈 마음을 진심 어린 노래로 채워주기 위해서다. 손 교수의 위로 같은 노래 선물에 눈물을 흘리는 환자가 많은 이유다.
그가 맡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유방암센터는 1989년 문을 연 뒤 수술 건수 전국 1위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매년 2800여 명이 이 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는다. 누적 환자는 4만2000명이 넘는다. 양적 1위에 그치지 않는다. 치료 성적 면에서도 세계 최고다. 3차 병원인 상급종합병원을 넘어 4차 병원을 표방하다 보니 다른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손 교수를 찾는 환자도 부지기수다. 이들 중엔 치료가 어려울 것이란 판정을 받은 환자도 많다. 높은 성과에도 그는 인터뷰 내내 ‘겸손’을 강조했다. 그는 “유방암센터의 다학제 팀원이 분야별로 수십 명씩 근무하고 있지만 ‘나만 잘났다’고 튀는 사람이 없다”며 “내 앞에 있는 환자 치료 성적을 높이기 위해 다른 진료과 의사들에게 최대한 협력한다는 생각을 하는 의사들만 모였다”고 했다.
◇협심이 1위 병원 만든 ‘전통’
한 환자를 여러 의사가 함께 보면서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 다학제 진료가 잘 자리 잡은 것도 이런 병원 내 문화가 배경이 됐다. 유방외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산부인과 등의 의료진이 함께 환자에게 맞는 계획을 세우고 치료에 나선다. 치료 계획에 일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돋보이기 위해’ 불협화음이 생기는 일은 거의 없다. 2023년 기준 연간 2000건이 넘는 환자에게 이런 다학제 통합진료를 시행했다. 서울아산병원을 국내 유방암 1위 병원으로 만든 것은 결국 이런 ‘전통’이란 의미다.
다학제 진료에 집중하는 이유는 환자마다 최적의 치료법이 달라서다. 임신을 원하는 가임기 유방암 환자는 ‘젊은 여성 유방암클리닉’에서 가임력을 보존하기 위해 산부인과 의료진이 치료법을 제안한다. 암이 크거나 많이 진행된 환자는 ‘수술 전 선행 전신치료 클리닉’에서 종양내과 의료진이 주도해 항암치료법을 제안한다.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는 ‘유전성 클리닉’에서, 암이 다시 생긴 환자는 ‘재발암 클리닉’에서 돌본다. 치료를 마친 환자라도 나중에 재발할 위험 등을 고려해 ‘평생건강 클리닉’을 통해 후속 진단검사 일정 등을 안내한다.
◇삶의 질 고려해 부분절제 확대
최근엔 암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과거엔 암이 생기면 유방을 모두 들어냈지만 최근엔 부분절제 비율이 60~70%까지 늘었다. 환자 세 명 중 한 명은 암 수술과 함께 복원 수술을 받는다. 수술 후 유방조직을 떼어내면 모양이 달라질 수 있어 콜라겐 등 생체조직으로 양쪽 가슴을 비슷하게 유지하는 치료도 도입했다. 환자 조직을 재건술에 쓰거나 로봇과 3차원(3D) 프린팅 기술을 수술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지만 손 교수에게 매 순간 최우선은 환자다. 그의 연구실 한쪽엔 환자와 보호자들이 직접 쓴 손편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이들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여러 차례 편지를 읽는다는 그는 환자들의 불안감을 줄여주기 위해 2005년 처음 <유방암 환자를 위한 치료안내서>를 펴냈다. 최신 의료 정보 등을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2022년 여덟 번째 개정판을 선보였다.
손 교수는 “내 앞에 있는 모든 의사는 나를 살리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유방암은 다른 암에 비하면 치료 성적이 상당히 좋은 데다 새 치료제도 계속 나오고 있다”며 “암이 생겼더라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 약력
▷1990년 경북대 의대 졸업
▷2003년~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
▷2010~2011년 미국 하버드대 의대 다나파버 암연구소 연수
▷2024년~서울아산병원 유방암센터 소장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