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또다시 법무부와의 반(反)독점 재판에서 패소했다. 미국 연방법원은 온라인 광고 기술 시장에서 구글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검색 엔진 시장을 불법 독점했다는 판결을 받은 지 불과 8개월 만이다. 메타가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쟁자를 제거했다는 이유로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정 다툼을 벌이는 등 ‘올드 빅테크’의 수난이 이어지면서 글로벌 기술산업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반복되는 반독점 규제의 역사
구글은 1998년 설립됐다. ‘닷컴 버블’을 뚫고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기업이다. 검색과 광고를 결합한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로 27년간 미국 빅테크의 상징으로 군림해왔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연방법원 판결은 구글의 아성에 치명타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 법원은 구글이 웹사이트의 광고 배치 및 게시를 돕는 ‘광고 서버’ 시장과 광고를 실시간으로 사고파는 ‘광고 거래소’ 시장을 독점했다고 판단했다. 온라인 광고와 관련한 거의 모든 단계를 구글이 장악해 경쟁자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광고주나 퍼블리셔(광고를 걸 수 있는 웹사이트 혹은 앱)는 구글을 통해야만 더 좋은 광고를 받을 수 있는 데다 구글은 ‘AI 애드 매니저’라는 구글 광고 플랫폼을 이용하는 대가로 광고비의 20~30%를 수수료로 부과했다. 언론사와 출판사 등 온라인 퍼블리셔의 90%가 구글을 통해 온라인 광고를 집행한다.
이번 판결이 연방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면 구글은 광고 기술 사업 부문을 강제 매각해야 한다. 법무부는 온라인 광고 사업을 총괄하는 구글 네트워크를 매각하거나 최소한 구글 네트워크 내 구글 애드매니저 팀이라도 분할하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법원에 요청했다. 구글 네트워크 사업부는 지난해 31억달러(약 4조4000억원)의 매출을 냈다. 이는 지난해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 전체 매출의 8.7%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상황은 구글에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으로 유럽연합(EU)의 반빅테크 정서가 강해지고 있어서다. EU의 규제당국도 구글에 애드매니저 팀 분할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 테크산업 주도권 경쟁 치열
반독점 규제의 올가미에 걸린 빅테크 원조는 마이크로소프트(MS)다. 1998년 미 법무부는 MS가 자사 운영체제 윈도우에 인터넷익스플로러(IE) 웹 브라우저를 기본 적용하는 방식으로 당시 경쟁자인 넷스케이프를 제거했다며 법원에 제소했다. 2000년 지방법원이 분할 명령을 내렸지만 이듬해 MS는 10년간 정부의 감시를 수용한다는 굴욕적인 합의 끝에 분할 위기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
당시 MS의 패소는 구글 같은 신생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MS가 주춤하는 사이 구글은 검색 엔진 기업으로 성장하며 2004년 애드워즈라는 광고 수익 모델을 확립했다. 인터넷으로 책을 판매하던 아마존이 클라우드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페이스북(현 메타)이 SNS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도 이즈음이다.
구글, 메타 등 올드 빅테크가 흔들리며 미 테크산업을 주도할 ‘뉴페이스’의 성장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빅테크의 기대와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규제 칼날이 무뎌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법무부 반독점국장으로 게일 슬레이터를 임명하며 “빅테크는 그간 난폭하게 행동해왔고, 경쟁을 억눌러왔으며, 중소 테크기업과 미국인 권리를 탄압해왔다”고 강조했다.
테크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시장을 주도하는 오픈AI, 저궤도 인공위성 시장을 장악한 스페이스X, 디펜스테크 신예로 불리는 AI 드론 제작 업체 안두릴 등이 대표적인 뉴 빅테크”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