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제약·바이오”… ‘K더마’로 진화하는 국내 뷰티 산업

16 hours ago 3

[토요기획] K뷰티 미래 먹거리 ‘더마코스메틱’… 글로벌 더마코스메틱 시장 규모
2032년 130조 원대로 성장 전망… 고령화로 안티에이징 수요 증가
국내 브랜드에도 해외 관심 집중… 대미 화장품 수출액 역대 최대
명품 앞세운 프랑스 제치고 1위… 제약사, 의약품 R&D 역량 살려
피부 재생 등 독자 성분 개발-활용… “약국 필수 구매 아이템” 입소문
합성생물학 등 ‘뷰티 과학화’ 가속… 동식물 대체할 신소재 개발에 도움

지난달 23일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개최된 ‘서울라이프 IN 도쿄’ 행사에 대웅제약 ‘이지듀’ 팝업스토어가 마련됐다. 대웅제약 제공

지난달 23일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개최된 ‘서울라이프 IN 도쿄’ 행사에 대웅제약 ‘이지듀’ 팝업스토어가 마련됐다. 대웅제약 제공
《‘K더마코스메틱’ 세계시장 휩쓴다

요즘 서울 명동과 강남 대형 약국, 올리브영 매장은 ‘K더마코스메틱’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기미, 여드름, 재생 보습 등 기능성에 집중한 국내 제품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외국인들의 필수 쇼핑 품목이 됐다. 최근에는 글로벌 제약사들도 사업에 뛰어들면서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합성생물학 등 첨단 기술이 접목된 더마코스메틱은 향후 뷰티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서울 중구 명동의 대형 올리브영 매장. 14개 계산대 앞 대기 줄마다 네온색 전광판이 번쩍였다. 택스 리펀드(면세 혜택)를 위해 실물 여권을 준비하라는 안내 문구가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번갈아 가며 전광판 위에 나타났다.

명동 근처 약국에도 손님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매장 중심과 계산대 주위에는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약국 화장품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었다. 기미 미백, 여드름, 재생 보습 등 각각의 기능을 설명하는 친절한 제품 설명도 붙어 있었다.

메타, 구글 등 빅테크의 한국 법인 직원들은 출장차 한국을 찾은 본사 직원들에게 서울 강남의 대형 약국과 올리브영의 위치를 안내하는 일이 거의 매뉴얼처럼 굳어졌다고 했다. 미국 현지 가족과 친구들에게 부탁받은 세럼, 크림 등 화장품을 사겠다는 출장자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인들이 프랑스 파리 필수 코스였던 ‘몽주약국’에 들러 화장품을 사 왔던 것처럼 K뷰티 인기에 힘입은 K약국 화장품이 대세가 된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틱톡에는 “서울 시내 약국에서 늘 품절인 리쥬란 성분 크림을 겨우 구했다”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인증 영상들이 올라올 정도다. 명동의 한 약국 관계자는 “피부 재생 효과가 있는 리쥬란 성분 화장품을 구매하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특히 많은데 인기 제품은 지난해 말부터 품절이라 서울 시내 약국에 전화를 돌려 재고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더마코스메틱 제품들이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한국 여행 시 구매 필수템으로 자리 잡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수요로 시장이 커지자 기존 화장품 제조사뿐 아니라 제약·바이오기업, 백화점 등 유통사, 패션업체들까지 일제히 더마코스메틱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더마코스메틱은 화장품(cosmetic)과 피부과학(dermatology)의 합성어다. 주로 의사, 제약사 등 의료 전문가가 연구개발(R&D)에 참여해 화장품의 안전성과 의약품의 효과를 함께 볼 수 있도록 개발된 제품을 뜻한다. 화장품에 치료의 개념을 접목해 여드름, 아토피 등 피부 질환 개선, 안티에이징 등 의약품 수준의 고기능성 화장품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 성장세 가파른 세계 시장… K뷰티도 ‘K더마’로 진화

시장조사기관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국내 더마코스메틱 시장 규모는 2017년 5000억 원에서 2022년 4조5325억 원까지 빠르게 성장했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22년 357억7000만 달러(약 49조1500억 원)에서 2025년 479억 달러, 2032년 949억5000만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이 가파른 성장세는 △피부 질환 증가 △예방 중심 스킨케어 인식 확대 △첨단 기술 적용 △전문가 추천 신뢰도 △피부 시술 후 홈케어 수요 증가 등에 힘입은 것으로 분석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K뷰티에서 한 단계 진화한 K더마는 의학적 신뢰와 한국 기술력이 결합된 브랜드로서 글로벌 소비자들 사이에서 확실한 차별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화장품 업계는 더마코스메틱 시장 급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말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이 한국의 고운세상코스메틱을 약 2550억 원에 인수해 주목을 받았다. 고운세상코스메틱은 2003년 피부과 전문의 안건영 박사가 설립한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닥터지’를 운영 중이다.

글로벌 기업인 P&G 역시 2022년 전문의가 설립한 미국 프로바이오틱스 성분 기반 스킨케어 브랜드인 툴라스킨케어를 인수했다. LG생활건강은 2014년 피부과 화장품인 차앤박화장품(CNP)을 운영하는 씨앤피코스메틱스 지분을 인수한 데 이어 기미 치료제 도미나 크림을 대표 제품으로 보유한 태극제약을 사들였다. 이어 2020년 약국 화장품으로 유명한 피지오겔의 아시아·북미 사업권을 확보하며 사업을 확장했다.

뷰티 업계로 눈을 돌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의약품 연구개발역량을 내세워 더마코스메틱 독자 브랜드를 발 빠르게 론칭하고 있다. 의약품 개발로 확보한 기술력을 토대로 더마코스메틱을 미래 ‘캐시카우’로 키우겠다는 목표에서다.

● 대미 화장품 수출 역대 최대… 뷰티 강국 佛 추월

서울 명동에 위치한 올리브영 글로벌 특화매장 모습. 택스 리펀드를 위해 여권을 준비하라는 안내가 나오고 있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서울 명동에 위치한 올리브영 글로벌 특화매장 모습. 택스 리펀드를 위해 여권을 준비하라는 안내가 나오고 있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세계 최대 뷰티 시장인 미국이 주목한 차기 K뷰티 분야도 더마코스메틱이다. 임상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화장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의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에스트라’가 최근 미국 뷰티 유통기업인 세포라와 독점 계약을 맺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국제무역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화장품 수출액은 17억100만 달러로 샤넬과 디올 등 유명 명품 뷰티 브랜드를 보유한 프랑스(12억6300만 달러)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전체 수출 규모로도 사상 최대치였다. 이가영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는 “미국 이커머스 내 K뷰티 판매액 중 스킨케어 제품 비중은 무려 85%로 압도적”이라고 분석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화장품 생산 실적은 전년(14조5102억 원)보다 20.9% 늘어난 17조5426억 원이었다. 전체 수출액은 20.3% 증가한 102억 달러로 집계되며 생산액과 수출액 모두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고령 인구 증가도 더마코스메틱 시장 성장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0년 10억 명에서 2030년 14억 명, 2050년에는 21억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는 “고령층의 피부 노화 고민이 큰 만큼 의학적 효능이 입증된 제품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업계에선 레티놀, 펩티드 등 노화 방지 성분을 앞세운 고기능성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레시던스리서치는 지난해 567억1000만 달러였던 글로벌 안티에이징 화장품 시장 규모가 2034년 1014억6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 수십 년 의약품 R&D 역량으로 독자 성분 개발

업계는 더마코스메틱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며 기능성과 실제 효능에 대한 특허 성분 확보 기술력이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정KPMG는 관련 보고서에서 “더마코스메틱 시장에 진출한 주요 기업은 시장 주도를 위해 독자 성분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며 “매년 신원료 개발, 성분 특허 등 방법으로 신제품을 출시하고, 기존에 없던 원료에 대해서도 자체적으로 수년간 연구개발을 거쳐 성분의 기능성과 기준 등을 검증받고 있다”고 했다.

특허 성분 확보에 가장 유리한 기업은 의약품 개발 역량을 보유한 제약사들이다. 대웅제약은 ‘문제 피부에 제약을 걸다’라는 슬로건으로 더마코스메틱 브랜드 ‘이지듀’를 만들었다. 병의원 전용 화장품에서 출발해 임상적 효능과 피부 개선 결과에 집중하는 효능주의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대웅제약이 세계 최초로 의약품화한 국내 1호 바이오신약 물질인 DW-EGF(고활성 상피세포 성장인자)를 내세운 제품군이 대표적이다. 이 성분은 당뇨병성 족부 궤양처럼 피부 조직이 손상되는 질환의 재생 치료제로 쓰이는 만큼, 강력한 피부 재생 효능을 가진 물질로 평가된다. 이지듀 대표 제품인 ‘기미앰플’은 2022년 출시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2000만 병 이상 판매됐다. 중국 현지 최대 직구 플랫폼인 티몰 글로벌, 더우인 글로벌에 입점한 지 6개월 만에 기미앰플 단일 품목으로 15만 개 판매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왕훙(중국 인플루언서)들이 한국에서 피부과 시술을 받고, 시술 후 피부 진정 및 재생을 위해 이지듀 제품을 사용하는 콘텐츠가 늘며 입소문을 탔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도 과학기술을 적용한 ‘정밀 스킨케어’가 대세가 되며 더마코스메틱 수요가 커지고 있다. 대한화장품협회에 따르면 중국 여성 중 36.1%가 민감성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환경 오염, 스트레스, 자외선 노출, 생활 패턴의 변화로 2030년에는 이 비중이 48%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 ‘약국 효자템’ 마데카솔-후시딘, 화장품으로 변신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한 약국에 여드름 흉터 치료제 등 인기 ‘약국템’들이 진열돼 있다.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한 약국에 여드름 흉터 치료제 등 인기 ‘약국템’들이 진열돼 있다.
동국제약은 국내 대표 상처 연고인 마데카솔의 핵심 성분으로 화장품을 만들어 성공한 사례다. 2015년 센텔리안24를 론칭하며 화장품 사업에 진출한 동국제약은 50년간 주력해온 식물성 원료의 R&D 역량을 바탕으로 마데카솔의 주원료인 센텔라아시아티카 추출물로 센텔리안24를 개발했다. 센텔리안24는 2015년 4월 론칭 이후 지난해 말 기준 누적 매출액 1조 원을 돌파했다. 일본과 미국,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 글로벌 시장에도 온·오프라인 유통망을 구축한 데 이어 최근엔 유럽 유통사 100여 곳과 만나 협업을 논의했다. 지난해 4월 중소형 가전업체인 위드닉스를 인수해 뷰티 디바이스 시장도 공략한 데 이어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회사 리봄화장품을 인수해 생산 역량을 키웠다.

동화약품도 특허권을 보유한 후시딘 원료를 활용해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다. 효자 상품인 후시딘의 상처 치료 성분을 적용하고 마이크로바이옴 소재로 후시드크림을 만든 것이다. 이 성분 역시 후시딘 연고 성분과 유래가 동일한 푸시디움 콕시네움을 발전시켰다.

동아제약은 여드름 등 트러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약국에서 판매하는 여드름 흉터 치료제인 노스카나의 핵심 성분을 담은 트러블 전용 화장품을 출시했다. ‘약국 효자템’을 화장품 시장으로 확대한 것이다. 더마코스메틱 브랜드인 ‘파티온’의 노스카나인 트러블 세럼은 2022년 출시돼 지난해 누적 판매 100만 병을 돌파했다. 9년간의 연구를 통해 진정 성분인 헤파린 RX 콤플렉스를 독자 개발한 것이 특징이다. 동아제약은 지난해 베트남, 말레이시아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 브랜드관을 열었고, 미국 최대 유통 플랫폼인 아마존에도 입점해 유통망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출시한 ‘포도당 하이드로 에센스 라인’은 히알루론산, 판테놀, 18종의 아미노산이 특수 배합된 포도당 하이드로 콤플렉스 성분과 바이털 이온 시스템을 적용했다. 제품 사용 후 하루에 물 2L를 마신 피부보다 높은 수분 효과가 입증됐다면서 ‘피부에 맞는 포도당’이라는 홍보 전략을 펴고 있다.

일명 ‘바르는 리쥬란’으로 알려진 PDRN(폴리디옥시리보뉴클레오티드) 기반 리쥬비넥스크림은 파마리서치가 만들어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이다. PDRN은 연어의 생식세포에서 인체와 유사한 유전자를 추출해 만든 물질로 손상된 조직의 세포 재생을 촉진하고 통증을 조절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성형수술이나 피부 시술로 민감해진 피부를 빠르게 재생시키는 제품으로 입소문을 타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약국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말부터 약국에선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품절 사태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 뷰티 ‘게임 체인저’ 된 합성생물학

화장품 개발에도 첨단 과학기술을 접목하는 것이 대세가 됐다. 보건복지부 산하 피부기반기술개발사업단은 “소비자들의 효능 증거주의 요구에 따라 피부에서 발생하는 생리적·생화학적 연구가 활발해지는 등 과학화 트렌드가 강화되고 있다”며 “과학적 근거에 민감한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노기술을 활용한 성분 전달력 향상, 바이오테크놀로지를 통한 신소재 개발 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뷰티업계에서는 체내 다양한 미생물 생태계를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피부 진단 등 최첨단 기술 접목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세포 및 미생물의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설계하는 합성생물학도 뷰티업계의 게임 체인저로 급부상했다. 식물이나 동물이 아닌 합성생물학 기술을 기반으로 더 많은 화장품 성분들이 생산되고, 지금은 얻기 어려운 신소재도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과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상어 추출물을 인공 합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상어 간에서 추출하는 스콸렌은 주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에 면역증강제로 쓰이며 보습, 노폐물 흡착에도 뛰어나 화장품 재료로도 사용된다. 미국의 합성생물학 기반 기업인 아미리스(Amyris)는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당을 유전자 조작 효모로 변환시켜 인공 스콸렌을 생산한다. 이 공정은 연간 200만 마리 이상의 상어를 구할 수 있는 수준의 동물 대체 효과를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업이 생산한 인공 스콸렌은 자사 화장품 브랜드와 글로벌 뷰티 기업들에 납품되고 있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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