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공격이 러-우 전쟁의 판도를 바꿀진 두고 봐야겠지만요. 이젠 ‘드론전쟁 시대’라는 것만은 확실히 일깨워주는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전쟁의 판도를 바꿔놓은 드론의 힘을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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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셋, 조이스틱, 자폭드론
윙~. 거대 파리의 날갯짓을 연상케 하는 이 소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군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소리입니다. 적군의 드론이 그들을 발견했거나 곧 공격할 거란 뜻이기 때문이죠. 드론을 향해 항복하는 군인들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신 적 있을 겁니다. 전선에서 포로로 붙잡힌 많은 병사들이 포로가 되기 전까지 적군 병사를 한명도 마주치지 못했다고 얘기한다죠. 이 전쟁에서 군인들은 사람이 아닌 드론과 싸우고 있습니다.전쟁이 처음 일어났던 2022년 초만 해도 우크라이나 최전선은 귀청이 터질 듯한 요란한 포격 소리로 뒤덮였습니다. 진군하는 러시아 탱크와 이를 막는 대전차 미사일 발사가 이어졌고요.
하지만 3년 만에 전쟁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최전선에선 병사들이 삽질로 파낸 참호 안에 웅크리고 있죠. 마치 100여 년 전 지긋지긋한 참호전으로 유명했던 1차 세계대전을 연상케하는 모습입니다.
막느냐 뚫느냐
그럼, 왜 드론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렴한 데다 단기간 대량생산이 가능한 무기이기 때문이죠.특히 가장 인상적인 건 가격. 한대당 제작비용이 400달러(55만원) 정도입니다.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이 1발당 8만 달러(약 1억1000만원)니까, 그 200분의 1인 거죠. 바로 이런 소형 드론이 이번에 수백억원짜리 러시아 전투기들을 날려버린 겁니다.
2022년 5개였던 드론 제조기업이 이제 500개 넘을 정도로 우크라이나는 드론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죠. 우크라이나 최대 드론 생산업체인 스카이폴(Skyfall)은 소형 드론을 하루 4000개까지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아직은 모터·영상 송신기 등 중국산 부품에 일부 의존하지만, 자체 부품을 늘려가는 추세죠.
또 작고 수시로 떼 지어 나타나는 소형 1인칭 시점 드론은 격추하기도 어렵고 비효율적입니다. 그래서 드론 방어를 위해 강력한 방해 신호를 방출하는 ‘재밍’ 기술을 이용하죠. 드론과 조종사 간 무선통신을 끊어버려서 경로에서 이탈시키는 건데요.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런 재밍으로 한 달에 약 1만대의 드론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전파 교란이 먹히지 않는 신종 드론이 점점 늘고 가는데요. 일단 방해전파를 피해 주파수 대역을 빠르게 전환하는 드론이 나왔고요. 또 러시아군은 지난해부터 ‘광섬유 드론’을 도입해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무선 통신 대신 광섬유를 이용한 유선 통신으로 작동하는 드론인데요. 마치 연줄에 매달린 연처럼, 드론이 몸체에 가느다란 광섬유를 매단 채 10㎞ 넘게 날아가는 거죠. 통신선이 중간에 걸리지 않을까 싶지만 의외로 나무 사이도 잘 통과하면서 멀리까지 갈 수 있다는군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두 나라 모두 드론 기술 면에서 놀라운 속도로 진화 중입니다.
군사력의 본질이 변했다
드론은 전쟁의 모습을 확 바꿔놨습니다. 대형 전차나 장갑차는 너무 많은 전자신호를 방출하기 때문에 전투 드론의 쉬운 먹잇감이죠. 1인칭 시점 드론은 전차의 가장 취약한 부분(열린 해치, 엔진, 포탑에 저장된 탄약)을 정밀하게 타격해 치명상을 입힙니다.그래서 이제 러시아군은 장갑차 대신 오토바이나 전동 스쿠터, 때론 도보로 이동하곤 합니다. 병사들은 배낭에 휴대용 재밍 시스템을 달고 다니고요. 2차 대전 이후 이어졌던 ‘탱크의 시대’가 저물었단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우크라이나 전 총사령관(2021~2024년) 발레리 잘루즈니는 이에 대해 “군사력의 본질은 이미 변했다”고 말합니다. “무인 시스템과 디지털 기술로 인해 전통적인 무기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승리는 이제 기술로 적을 앞지르는 능력에 전적으로 달려있습니다.”
아직은 인간 조종사의 조종과 승인이 필요한 형태입니다. 드론이 스스로 몇시간씩 날다가 표적을 발견하면 알아서 적을 파괴하는 임무까지 수행하는, 그런 일은 현재까진 없죠. 대신 조종사가 원격으로 드론을 조종하다가 목표물, 예를 들어 오토바이 탄 군인을 발견하면 ‘저게 목표물’이라고 찍어줍니다. 그럼 카메라 영상을 읽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AI 드론이 그 목표물을 알아서 추적하죠.
자율주행 킬러드론은 드론전쟁 판도를 흔들 수 있습니다. 현재 드론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조종사 인력이죠. 1인칭 시점 드론으로 목표물 정확히 타격하려면 고도로 숙련된 조종사가 필요한데요. AI 드론은 조종사가 일일이 비행 각도를 미세하게 조종해 주지 않아도 목표물을 놓치지 않습니다. 광학센서와 머신러닝 기술을 이용해 날기 때문에 GPS 방해전파에도 끄떡없고요.
AI 자율주행 킬러드론의 등장?
이미 많은 기업이 군사용 AI 자율주행 드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오픈AI와 협력하는 미국의 AI 방위 스타트업 안두릴(Anduril Industries)이 대표적이죠. 안두릴은 고도의 자율성을 가진 무인 무기를 생산합니다. 군사용 소형 AI 드론부터, 조종사가 필요 없는 무인 자율 전투기(퓨리)와 무인 잠수함(다이브XL)까지, 영역이 광범위하고요. 또 이를 지휘할 수 있는 AI 기반 플랫폼(Lattice)도 함께 공급합니다.‘현실판 스타크 인더스트리(아이언맨의 회사)’로 불리는 안두릴은 이제 기업가치 280억 달러를 넘볼 정도로 커졌는데요. 실리콘밸리 억만장자 출신인 안두릴 창업자 파머 러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죠. “자율성은 강력합니다. 지금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무기 체계가 너무나 많아요. 한 사람이 100대의 항공기를 지휘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모든 항공기에 조종사가 한 명씩 있는 것보다 훨씬 쉽죠. 그렇게 되면 미국인의 생명이 훨씬 덜 위험해질 것입니다.”
모든 전쟁은 끔찍하지만, 인간의 개입 없이 누군가를 죽일지 말지가 결정되는 전쟁은 더 디스토피아적인데요. 그래서 이에 대한 유엔 차원의 규제를 주장하는 ‘스톱킬러로봇(Stop Killer Robots)’ 같은 단체도 있습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UN 사무총장 역시 공격용 자율무기 시스템에 대해 “정치적으로 용납할 수 없고 도덕적으로 혐오스럽다”고 말했고요.
하지만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진가를 입증해버린 드론전쟁의 기술 진화를 과연 주요국이 스스로 멈출 수 있을까요. ‘스트롱맨’이 대세인 이 시대에 그런 자제력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파머 러키 안두릴 창업자는 킬러로봇 비판에 대해 이렇게 반박합니다. “좋아요, NATO가 물총과 새총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말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쓸까요?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건 미국과 동맹국들이 적을 위협하는 힘의 방어막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By. 딥다이브
무인 항공기, 즉 드론이 미래 전쟁의 중심이 될 거라는 예측은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된 건 드론 중에서도 특히 소형드론이 의외로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단 점입니다. 소형드론의 진화가 무서운 이유이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수백억원짜리 러시아 전략폭격기가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전쟁이 3년 넘게 이어지면서 이 전쟁은 ‘드론 전쟁’이 되었습니다.
-수십만원에 불과한 취미용 ‘1인칭 시점 드론’이 드론전쟁의 보병 역할을 합니다. 헤드셋을 쓴 조종사가 조이스틱으로 원격 조종해 자폭공격을 하죠. 이를 피하기 위해 군인들은 탱크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거나, 배낭에 휴대용 재밍 시스템을 달고 다닙니다.
-전투용 드론은 갈수록 진화합니다. 방해전파를 무력화하는 유선통신의 ‘광섬유 드론’이 등장했고요. 숙련된 조종사가 필요 없는 AI 자율주행 드론도 투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인간의 승인 없인 드론이 공격할 수 없지만, 곧 스스로 알아서 표적을 식별해서 공격하는 드론도 나올 겁니다. 고도의 자율성을 가진 무인 무기의 등장은 더이상 미래 얘기가 아닙니다.
*이 기사는 6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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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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