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에 1등 뻿앗긴 성찰은
‘2등 보상·1등 투자’가 올바른 답
중국 1등 기업 화웨이 R&D 총액
성과급에 몰빵하는 삼성, 정상인가
화웨이라는 기업은 갈수록 발군이다.
지난주, 초미세 공정의 핵심 설비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치 없이도 2031년까지 1.4㎚(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반도체를 양산하겠다고 선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회로를 접어 적층하는 독자 기술로 EUV 의존성을 돌파하겠다는 구체적 전략과 목표점까지 제시했다. 그 ‘무모함’과 그래도 ‘한다면 한다’는 게 화웨이의 멘털리티다.
이 글을 쓰는 건 삼성전자의 글로벌 투자자들이 화웨이와 삼성의 미래 경쟁을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이 커서다.
얼마 전 맥킨지는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9개 ‘옴니스케일러(Omniscaler)’를 선정했다. 단순히 돈 잘 버는 기업이 아니다. 회수 구간이 까마득한 R&D에 집요하게 투자하며, AI가 일으키는 전방위 수요 속에서 하이퍼스케일러를 뛰어넘는 사업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후보 기업들이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초거대 역량기업’.
9개사 중 미국 빅테크 6개사를 제외한 아시아 기업은 삼성전자, 화웨이, 알리바바 셋뿐이다. 유럽과 일본 혈통 기업은 전멸이다. R&D 투자 역량 하나로 기업의 미래 시장 지배력을 가리는 맥킨지의 간결한 접근은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에 주력하는 기업은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시대가 왔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함께 이름을 올린 삼성과 화웨이의 R&D 역량은 실제로 어떨까.
기자는 1년 전 이맘때 칼럼으로 화웨이와 삼성전자의 좁혀진 격차를 지적한 바 있다. 요지는 이렇다.
“충격적인 사실은 한국의 삼성전자가 작년 화웨이와 같은 35조원을 연구개발비로 썼다는 점이다. 같은 돈을 쓰고 한 기업은 연달아 혁신의 이정표를, 다른 기업은 지속가능 성장에 물음표를 키운다. 최소한 어느 한 곳은 잘못된 투자 방향을 설정했거나, 개발자 생산성이 비교 열위이거나, 개발비 순환 과정에 누수가 있다는 뜻이다.”
칼럼을 게재할 당시 삼성전자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AI 시대의 삽과 곡괭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에 올라타지 못해 SK하이닉스에 시장 1위 자리를 빼앗겼다.
반면 화웨이는 AI칩 자체 개발은 물론 모바일과 PC 운영 체계에서도 기술 독립에 성공했다. 미국의 첨단기술 통제 압박이 커질수록 R&D 투자액을 키웠고 마침내 2024년 삼성전자를 앞서는 수준이 됐다.
자본 투자에 진심인 두 기업의 이듬해 성적표가 궁금해져 관련 자료를 다시 확인했다. 재역전은 커녕, 격차가 더 벌어져 있었다.
지난 4월 양사가 업데이트한 2025년 R&D 지표를 보면 삼성전자는 37조 8000억원, 화웨이는 39조 6000억원을 썼다.
눈에 보이는 절대적 액수에서도 벌어졌지만, 진짜 문제는 R&D 자금을 흡수하는 토양, 즉 연구 인력의 ‘밀도’에 있다.
화웨이는 임직원 21만여 명 중 11만 4000명이 엔지니어다. 조직의 53.7%가 매일같이 미국의 기술 장벽을 허물 도끼 날을 갈고 있는 셈이다. 이는 단순히 ‘돈을 많이 쓴다’는 차원을 넘어, 그 자본을 혁신으로 치환하는 인적 토양이 촘촘해 투자액이 누수될 위험성이 낮음을 시사한다.
지금 화웨이 홈페이지의 공시 내용을 그대로 적는다.
“2025년 12월 31일 기준, 11만4000명의 직원(전체 인력의 약 53.7%)이 R&D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25년 당사의 총 R&D 지출은 1923억 위안(39조6000억원)에 달했으며, 이는 총매출의 21.8%를 차지합니다. 지난 10년간 당사의 총 R&D 투자액은 현재 1조 3820억 위안(285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삼성전자는 투자자들에게 투자 밀도를 가늠할 수 있는 이런 기준점을 제공하지 않는다. 얼마를 썼다는 숫자만 기계적으로 나열할 뿐, “전체 직원의 몇 %가 R&D에 종사한다”는 소통과 고백의 언어가 없다.
그 불친절함에 더해, 올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임직원이 가져가는 성과급은 40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화웨이의 R&D 투자 총액을 넘기는 규모다.
이 숫자 하나만으로 삼성전자 성과급 합의가 얼마나 심각한 도덕적 해이인지 가늠할 수 있다.
거칠게 들리겠지만 임직원 ‘정신 자세’에서도 우려는 깊다.
성과가 없어도 수억 원의 성과급을 기대할 수 있는 보상 체계가 마련된 탓이다. 삼성전자 성과급 합의의 가장 큰 문제는 고액 성과급에 무임승차 하는 수만 명의 동료 속에서 ‘연구에 찐’인 이들이 치르는 박탈감과 의욕 상실일 것이다.
지난해 삼성전자보다 2조원을 더 쏟아부은 화웨이의 행보에서는 생존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읽힌다. 반면 삼성전자는 이번 성과급 합의로 말미암아 노사가 한통속이 돼 관료주의의 늪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인상을 준다.
엄격한 성과주의 대신 안방 돈잔치를 택하고, 그 안일한 관행을 향후 10년간 유지하기로 노조와 약속한 기업의 미래를 상상하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상상 이상의 기술적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제로 증명해 내는 글로벌 라이벌과의 경쟁에서도 결코 이길 수 없다.
그 근거는 한 해 중국 1등 기업의 R&D 투자 총액을 직원 성과급으로 흥청망청 쓰는 한국 1등 기업의 이상(異常) 징후 하나로 충분하다.
잠깐 졸면 죽는 이 바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활용하며 성장한 삼성이, SK하이닉스와의 HBM 경쟁에서 처절히 깨지고도 다시 어리석은 길을 가고 있다. 1등에서 밀려난 아픔과 성찰이라면 ‘2등 보상·1등 투자’가 정석이 돼야 한다.
저가형 반도체 가격이 폭등했다고 수 백페이지를 써도 모자랄 반성문을 ‘1등 보상’ 노사 합의으로 바꿔치기하다니, 세상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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