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국립공원 화양구곡
● 하늘을 떠받친 절벽, 구름이 비치는 못
화양구곡은 우암이 공자보다 숭앙한 송나라 주자가 말년에 들어가 살던 중국 푸젠(福建)성 우이(武夷)산 계곡을 노래한 ‘무이(武夷)구곡’을 본떴다. 우암은 붕당 파워게임 끝에 유배 도중 사약을 받았다. 그러나 5년 뒤 우암을 따르는 서인 노론은 재기했다. 왕실을 압도하는 노론의 시대가 열렸다. 그의 수제자 권상하가 화양서원과 만동묘(萬東廟)를 짓고 스승을 기리며 절경 아홉 곳을 정한 것이 화양구곡이다.
속리산국립공원 화양탐방지원센터에서 조금 걸으면 1곡 경천벽(擎天壁)이 계곡 너머 나타난다. 이름대로 하늘을 떠받들 듯한 기암절벽이다. 옛 기록처럼 ‘수백 장(丈, 1장은 약 3m)’ 높이와 넓이는 아니지만 웅장하다. 1744년 화양구곡과 송시열에 관한 기록을 모은 책 ‘화양지(華陽誌)’는 ‘우뚝 선 모습이 귀신이 깎아 놓은 듯하다’고 했다(박준호, ‘2011 국립청주박물관 새 단장 기념 특별전 화양서원 만동묘 전시 도록’, 2011). 우암이 직접 쓴 ‘華陽洞門(화양동문)’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무성한 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진 않는다. 우암은 스스로 ‘화양동주(華陽洞主)’라 부를 정도로 이 계곡을 아꼈다.
읍궁암에는 네모나게 옴폭한 홈이 여럿 있다. 읍궁비(碑)를 세운 자리다. 화양천은 폭우에 자주 넘친다. 그때마다 비석이 쓸려 내려가 다시 만들곤 했다. 그렇게 찾은 비석 4기가 옛 화양서원 터에 세워져 있다.
그 오른쪽으로 30m쯤 떨어진 큰 바위에 ‘蒼梧雲斷 武夷山空(창오운단 무이산공)’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중국에서 임금을 상징하는 창오산은 구름이 끊겼고, 주자가 살던 무이산은 텅 비었다는 뜻이다. 명나라 패망으로 무너져 가는 중화(中華)문화를 조선에서 지켜 내고 싶다는 우암의 의지가 엿보인다. 몹쓸 사대주의에 불과할까. ‘송시열의 중화주의는 명 왕조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아니라 예의를 핵심으로 하는 유교 문화 가치의 존숭과 계승 의식’이라는 분석도 있다(이한우, ‘이한우의 조선당쟁사’, 21세기북스, 2025).
첨성대에서 계곡을 건너면 6곡 능운대(凌雲臺)가 있다. ‘화양지’ 표현대로 ‘(땅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듯’ 위풍당당한 바위다. ‘능운’은 구름보다 높아 세속을 벗어난 경지라는 뜻이다. 다만 전깃줄 10여 가닥이 능운대를 꽁꽁 묶듯 가로지르고 있어 속세를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능운대에서 상류로 1km쯤 가면 7곡 와룡암(臥龍巖)이 화양천에 엎드려 있다. 길이 약 30m, 폭 7∼8m 되는데 ‘전체가 구불구불해 마치 용 같다’는 옛사람 말이 얼추 맞는다. 구불구불한 부위를 용 비늘로 보기도 한다. 앞서 6곡까지는 초탈의 경지를 바라듯 이름 지었지만, 이곳 와룡은 ‘삼국지’ 제갈량처럼 입신을 기다리는 마음이 느껴진다.좀 더 오르면 화양천 오른쪽 너머에 소나무 우거진 큰 절벽이 보인다. 청학(靑鶴)이 둥지를 틀었다는 8곡 학소대(鶴巢臺)다. 청학은 날개 여덟에 다리 하나, 사람 얼굴에 새 부리를 한 상상의 새다. 이 새가 울면 천하가 태평하다고 했다. 유학자라면 누구나 꿈꾼 세상일 게다.
● 바위에 새긴 글자들
글·사진 괴산=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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