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골레토' 만토바役 박지민
권력과 쾌락에 탐닉한 영주
욕망에 유혹과 배신 반복
끝에 남는 것은 외로움뿐
고교시절 록 밴드 보컬 활동
대학땐 SM서 연습생 생활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보아 노래를 작곡하던 친구 덕분에 지인 찬스로 오디션을 봤어요. 이기찬의 '플리즈'를 불렀는데 이수만 선생님이 저를 보고 '너 서울대냐. 얼굴 없는 가수로 가자'면서 연습생 생활이 시작됐죠."
좌충우돌 인생을 거쳐 전 세계가 인정하는 테너로 자기매김한 박지민이 오는 31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솔오페라단의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무대에 선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권력과 욕망의 화신으로 꼽히는 만토바 공작 역을 맡았다. 공연을 앞두고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공작은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화려함 속에서 공허함을 감추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박지민은 오스트리아 빈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와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등에서 활동했다. 2011년 한국인 테너로는 드물게 라 스칼라 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로 캐스팅되며 세계 정상 무대에 데뷔해 주목받았다.
고교 시절 교내 록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했던 박지민은 서울대 성악과 재학 중 6개월간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생활을 했지만 가요 쪽으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방송사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시절 교수님이 불러내 6개월간 제대로 된 성악 트레이닝을 받았지만 국내 콩쿠르에서 다 떨어졌다"며 "차라리 밖에 나가서 도전해보라는 교수님 제안에 출전한 해외 콩쿠르에서 덜컥 큰 상을 받고 자신감이 생겨 빈으로 유학을 갔다"고 회상했다. 대학 4학년 때 참가한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콩쿠르 얘기다.
'리골레토'에서 만토바 공작은 권력과 쾌락에 탐닉한 영주로 파티에서 체프라노 백작의 부인을 남편 앞에서 유혹해 침실로 데려가는 등 기행을 보인다. 주인공 리골레토의 딸 질다를 유혹한 뒤 부하 귀족들을 시켜 질다를 납치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후 다른 여인인 막달레나를 유혹하면서는 "여자의 마음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과 같다"며 아리아 '여자의 마음'을 부른다.
박지민은 공작을 '권력형 비리의 상징이자 인간적 결핍의 결정체'로 본다. 그가 유혹하고 배신하며 쾌락을 반복하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만토바 공작은 매혹적이지만 공허한 사람이다. 향기로운 꽃 같지만, 손대면 독이 퍼지는 존재"라며 "그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더 외롭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표 아리아 '여자의 마음'도 이에 맞게 해석한다. "다들 밝고 경쾌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굉장히 슬픈 노래"라며 "모든 걸 가졌는데도 더 이상 가질 게 없는 사람의 공허한 웃음"이라고 설명했다.
리골레토와의 관계에 대해 그는 "공작에게 리골레토는 광대이자 하인 같은 존재"라면서 "둘은 사회적으로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지만, 한쪽은 권력의 꼭대기에 있고 다른 한쪽은 그 밑에서 조롱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딸 질다를 유혹하고 파멸시키는 장면에 대해서는 "공작은 리골레토의 절규를 알면서도 그 순간을 즐긴다. 그것이 그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박지민은 이번 작품이 단순한 재도전이 아니라 50세를 앞둔 성악가의 자기 실험이라고 표현한다. "20년 전엔 테크닉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감정의 온도와 인물의 결을 표현하고 싶다"며 "나이가 들수록 테너의 목소리에는 무게가 생긴다. 이제는 화려함보다 깊이를 보여줄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리골레토를 맡은 바리톤 강형규와의 협업 과정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박지민은 "스스로의 감정 농도가 너무 강하면 안 되고 상대의 숨결과 리듬을 듣는 게 중요하다"며 "강형규 선배의 연기는 진짜 딸을 대하는 것처럼 섬세하다"고 추켜세웠다.
이번 '리골레토'는 영상과 회전무대를 결합한 대형 프로덕션으로 기대를 모은다. 박지민은 "3D 영화처럼 화려하고 발레와 파티 장면까지 포함된 무대"라면서 "누구나 아는 '여자의 마음'을 기다리며 볼 수도 있지만 그 노래를 왜 부르는지 느끼면 훨씬 깊게 다가올 것"이라고 했다.
[김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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