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인터콘티넨털 카불'이 지켜본 아프간의 반 세기 역사

1 day ago 4

호텔은 특별한 공간이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주요 선택 사항이다. 호텔은 단지 잠을 자기 위한 숙박시설이 아니라 ‘경험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웅장하거나 모던한 인테리어, 정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음식, 깨끗하고 편안한 침구류, 한가로운 오후 한때를 즐길 수 있는 수영장과 피트니스 시설 등 사람들은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며 오감의 만족을 기대한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인터콘티넨털 카불'이 지켜본 아프간의 반 세기 역사

최근 영국에서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카불 최고의 호텔(The Finest Hotel in Kabul)>은 ‘특별한 호텔 이야기’ 또는 ‘호텔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이다. 1969년, 호화로운 호텔 ‘인터콘티넨털 카불’이 문을 열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왕국’이었고 카불은 ‘중앙아시아의 파리’로 불릴 정도로 화려했다. 언덕 위에 우뚝 선 반짝이는 하얀 상자 같은 이 호텔은 현대 국가로 거듭나고 싶어 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희망을 상징했다. 하지만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공격, 참혹한 내전, 미국의 침공, 그리고 탈레반의 부상과 몰락 등을 겪으며 세계에서 가장 불안하고 혼란한 곳이 돼 버렸고, 호텔의 희망도 절망으로 변하고 말았다. 오랜 기간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호텔은 문을 닫은 적이 없다. 언덕 위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카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BBC 특파원 라이즈 두셋은 1988년 크리스마스에 카불에 있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도착했다.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 다음 날이었다. 오랜 기간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소련군의 철수를 취재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한 그는 호텔의 웅장함과 직원들의 따뜻한 환대에 즉시 매료됐다. 이후 두셋은 ‘아랍의 봄’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중동 지역의 수많은 전쟁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취재하며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군 기자’로 이름을 알렸다. 수많은 전장을 누비는 동안에도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낀 카불의 그 호텔을 ‘제2의 고향’처럼 자주 찾았다. 그곳에서 호텔 직원과 투숙객들을 만나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고, 그런 에피소드가 모여 이 책이 탄생했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인터콘티넨털 카불'이 지켜본 아프간의 반 세기 역사

책에는 호텔에서 일했거나 머무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1970년대 카불의 최고 전성기 시절 그곳에서 하우스키퍼로 일한 하즈라트, 2001년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최초의 여성 셰프가 된 아비다, 그리고 20년간의 불안정한 민주주의 속에서 주어진 모든 기회를 붙잡으려 치열하게 노력한 20대 청년 말랄라이와 사데크 등 전쟁으로 얼룩진 비극 속에서도 다시 피어난 소시민의 희망과 따뜻하고 감동적인 사연을 읽을 수 있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인터콘티넨털 카불'이 지켜본 아프간의 반 세기 역사

호텔은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얽히고설킨 장소다. 이 책에서 호텔은 한 나라의 역사와 정치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특별한 도구’이자 ‘문학적 장치’다. 호텔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른 시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바라보게 한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이 현실적으로 겪는 문제와 고통, 그리고 전쟁과 갈등 가운데서도 피어나는 희망과 회복력을 만날 수 있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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