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사태 47일만에 ‘내란수괴’ 혐의
尹 영장심사 출석 “통치행위” 주장
野 “내란주동자에 상식적 법원 판단”
與 “野정치인과 형평성 원칙 지켜야”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19일 구속 수감됐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47일 만으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는 19일 오전 2시 50분경 내란 수괴 및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 대해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계엄군 수뇌부와 공모해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등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를 받는다. 국회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계엄포고령 1호를 발표하고, 군과 경찰을 투입해 국회를 봉쇄한 뒤 계엄해제요구안 의결을 방해한 혐의도 받고 있다. 여야 정치인 등의 체포를 지시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투입해 직원들을 체포·구금하려 한 혐의도 있다.
윤 대통령은 18일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약 45분간 “계엄은 국정 운영 정상화를 위한 헌법적 결단이자 대통령 고유의 통치행위”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려면 증거인멸 우려 외에 범죄 혐의의 소명 정도도 중요한 만큼, 법조계에선 법원이 윤 대통령의 내란 수괴 혐의가 일단 소명됐다고 판단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윤 대통령을 추가 수사한 뒤 24일을 전후로 검찰에 사건을 이첩할 예정이다. 공수처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소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 검찰은 보완 수사를 거쳐 다음 달 5일을 전후해 윤 대통령을 구속 기소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와 검찰은 내란 피의자 구속 기간을 총 20일로 합의한 상태다.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법치가 죽고, 법 양심이 사라졌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말조차 차마 꺼내기 어려울 정도의 엉터리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혐의가 확인되면 똑같이 구속돼 형평성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목격한 내란 범죄의 주동자에 맞는 상식적인 법원 판단”이라고 환영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 구속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尹, 45분간 직접 발언 “계엄은 통치행위”… 공수처 “2차 계엄 위험”
[尹 구속수감]
4시간 50분간 구속영장심사
‘최상목 쪽지’의 비상입법기구 묻자… 尹 “김용현이 썼나 내가 썼나 가물”
법조계 “내란 혐의 어느 정도 소명”… 尹측 “주거 뚜렷, 증거 인멸 어려워”
19일 오전 2시 50분경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는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 관련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구속영장을 청구한 17일만 하더라도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8일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변호인단을 접견한 후 직접 법정에 출석해 자신이 선포한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18일 오후 1시 26분경 윤 대통령을 태운 법무부 교정본부의 호송 차량이 대통령경호처의 경호를 받으며 서울서부지법으로 출발했다. 윤 대통령은 오후 1시 54분경 도착했고, 오후 2시부터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시작됐다.● “전형적 확신범” vs “고유 통치행위”
공수처는 이날 주임검사인 차정현 수사4부장을 비롯해 수사팀 검사 6명이 참석했고, 윤 대통령 측에선 대통령 본인과 8명의 변호사가 출석해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공수처는 프레젠테이션(PPT)을 통해 비상계엄은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국무위원 다수가 반대했음에도 윤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선포했다면서 내란 혐의가 소명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올 1월 1일 자필 서명 편지를 통해 극렬 지지자들의 결집을 호소해 체포영장 집행 방해를 선동한 점, 최근 텔레그램을 탈퇴한 상황 등을 증거인멸 우려의 이유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2차 계엄을 실행하려 했다면서 ‘전형적인 확신범’으로 재범 위험성이 크다는 점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 측도 준비해 간 PPT를 제시하며 체포와 수사의 불법성 등을 주장했다. 윤 대통령 측은 현직 대통령으로 관저에 머물면서 주거가 뚜렷하고, 증거를 인멸할 정황도 없다면서 공수처 주장을 반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수처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내란 혐의 수사권을 인정할 수 없고, 공수처의 1심 관할 법원이 서울중앙지법이라는 점에서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한 것은 관할 위반이란 점 등을 밝혔다.
● 4시간 50분 심사… 45분간 尹 직접 발언윤 대통령은 오후 4시 35분경부터 40분간 직접 재판부에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국내 정치 환경 등이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이었다면서,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고유한 통치행위이자 헌법적 결단이란 점 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심사 종료 전 발언권을 얻어 5분가량 추가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재판부는 “비상입법기구가 무엇이고, 실제로 창설할 의도가 있었는가”라며 직접 심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이 쓴 것인지 내가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며 “비상입법기구를 제대로 할 생각은 없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 “계엄을 정말로 할 생각이었으면 대충 선포하고, 국회에서 해제 요구안이 가결된다고 순순히 응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입법기구는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건넨 쪽지에 담긴 내용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부가 내란죄 구성 요건인 헌법기관 기능 마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비상입법기구 창설 의도를 확인하려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장심사는 4시간 50분 만인 오후 6시 50분경 종료됐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타고 온 법무부 호송 차량에 탑승해 서울구치소로 돌아가 결과를 기다렸다. 차 부장판사는 약 8시간의 숙고 끝에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 법조계, ‘내란 혐의 소명’ 분석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로 공수처 수사권이나 관할 법원 논란이 사실상 해소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서부지법이 체포영장에 이어 구속영장까지 발부했고, 서울중앙지법도 체포적부심을 기각하는 등 공수처의 수사와 영장 청구가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법원 판단이 연달아 나왔기 때문이다. 법원이 구속영장 발부를 통해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다고 판단한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려면 증거인멸 우려 외에도 범죄 혐의가 어느 정도는 소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혐의 소명’은 본재판에서의 유무죄 판단 기준인 ‘혐의 입증’보다는 문턱이 낮다는 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기엔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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