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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크립토란 무엇입니까
10여 년 전, 미국인 세 명과 영국인 한 명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미국인 존이 글 한 토막을 들고 와 우리 앞에 내밀며 "이게 말이 되냐?"라며 화를 냈다.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
"차를 만드는 법: 우선 물을 끓인다. 티포트에 적당량의 찻잎을 넣는다. 팔팔 끓는 물을 티포트에 붓는다. 3분에서 5분 정도 기다린 후 차를 건져 낸다. 티 스트레이너를 사용하면 편리하다. 티포트에 담긴 차를 잔에 따른다. 차를 마신다."
나는 존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물었다. 그는 "차는 머그잔에 티백을 넣어 만드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다 그런다"라고 대답했다. 평소 차를 즐겨 마시던 점잖은 영국인은 웃음을 숨기며 고개를 돌렸고, 솔직한 다른 두 미국인은 동시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이내 나온 말은 "in your neighborhood(너희 동네에서는)"이었다.
존이 살았던 미국 어딘가에서는 차를 머그잔에 티백을 넣어 마시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그래서 티포트에 찻잎을 넣고, 티 스트레이너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은 그에게 비현실적이고 잘못된 정보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게다가 그 글이 영어로 작성되었기에, 미국에서 온 존은 이를 바로잡고 싶었을 것이다.
가상자산, 암호화폐, 크립토, 코인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마다, 동네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트래티지사의 최고경영자인 마이클 세일러는 비트코인을 화폐와 금융을 대체할 최고의 미래 기술로 여긴다. 대선 후보 트럼프는 이를 선거 승리의 열쇠로 활용했으며, 대통령 트럼프는 국가 재정과 달러 패권 강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파월 연준 의장이나 개리 겐슬러 전 SEC 위원장은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으로 인정했고, 블랙록이나 피델리티 같은 회사들은 이를 파괴적 혁신이자 제도권 금융의 미래라고 판단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코인은 만들지도 않고 투자 명목으로 현금을 갈취하는 ‘코인 투자 사기’ 사건이나 일부 ‘잡코인’의 가격 급등락만을 찾아 읽고는 코인은 다 범죄이며 사기라는 믿음을 굳힌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비트코인이나, 만들겠다는 계획만 존재하는 이름 모를 김치코인이나 모두 같은 ‘나쁜 것’이다. 미국에서도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크립토를 전부 "나쁜 사람들이 나쁜 방법으로 나쁜 돈을 버는 것"으로 간주하며 강경한 반(反) 크립토 정책을 펼쳤고, 결국 트럼프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은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디지털 금융 기술에서의 미국의 리더십 강화’라는 제목의 1월 23일 자 행정명령은 디지털 자산 산업이 미국의 혁신과 경제 발전은 물론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정의하며,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디지털 자산, 블록체인 기술 및 관련 기술의 책임 있는 성장과 사용을 지원하는 것이 행정부의 정책임을 명시했다. 또한, 재무장관, 법무장관, SEC 위원장 등 관련 기관들에 30일 안에 이 정책 추진과 관련 있는 모든 규정과 가이드라인, 명령을 식별할 것을, 60일 안에 이 중 무엇을 폐지, 수정하거나 무엇을 채택할지를, 180일 안에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입법 및 규정 제안을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비트코인 전략준비자산 및 미국 디지털 자산 비축분 설립’이라는 제목의 3월 6일 자 행정명령은 30일 안에 미국 정부의 모든 기관이 소유한 디지털 자산을 전략준비자산 또는 디지털 자산 비축분으로 양도하는 것에 대한 법적 검토를 마칠 것을 명령했으며, 재무장관은 60일 안에 비트코인 전략준비자산 및 디지털 자산 비축분을 설립하고 관리하기 위한 법률 및 투자 고려사항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이렇게 미국이 빠른 템포로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정책 쇄신을 진행하는 가운데, 그간 미국의 크립토 산업 성장을 억눌러 왔던 여러 가지 그림자 규제들도 혁파되고 있다. 첫 번째 행정명령이 나온 1월 23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금융기관이 수탁한 가상자산을 부채로 기록하도록 지시한 가이드라인인 SAB121을 폐지한다는 내용의 SAB122를 발표했다. 2월 11일 상원 은행위원회 청문회에서는 크립토 사업자들이 이유 없이 은행 서비스를 거절당한 ‘디뱅킹(debanking)’ 문제에 대해 파월 연준 의장이 호된 질책을 들었다. 3월 7일 미국 통화감독청(OCC)은 해설서(Interpretive Letter) 1183을 통해 미국 내 은행들이 크립토 산업에 진출할 수 있다고 발표했고, 4월 24일 연준은 은행들이 크립토 자산에 대한 활동을 사전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이것이 ‘디뱅킹’ 해결의 실마리라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법인계좌 허용과 미국의 전략준비자산 행정명령을 전후해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으나, 정작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는 ‘무엇을 제한적으로 허용해줘야 하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논의는 주로 제도권 금융과 관련 법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크립토 산업이나 기술, 경제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논의에서 제외되어 있다.
소방관에게 전기자동차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화재 위험성과 진화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것이다. 피부과 의사에게 열대 해변에서의 휴가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자외선으로 인한 피부 손상과 피부암의 위험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가상자산에 대한 의견을 제도권 금융인과 법조인, 규제당국에 물으면 ‘파괴적 혁신’ 중 ‘파괴’만 언급될 것이다. 미국 시골 마을에서 온 존이 ‘차는 머그잔에 티백을 넣어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재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상자산 관련 논의가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6일 행정명령 서명 다음 날 미국 내 업계 대표 기업들을 초청해 ‘크립토 서밋(crypto summit)’을 개최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건전한 생태계 육성과 산업의 장기적 발전을 막는 애로사항이 무엇이고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하는지는 업계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의사결정권자들이 들어야 하는 의견은 금융인과 법조인의 의견이 아니라 가상자산 업계 사람의 의견이다.
백악관의 ‘크립토 차르(crypto czar)’는 미국이 ‘디지털 자산 황금시대에 진입했다’고 선언했고, 트럼프는 미국을 ‘비트코인 초강대국’, ‘전 세계의 크립토 수도’로 만들겠다는 선거 공약을 빠르고 확실하게 지켜가고 있다. 연방정부의 움직임에 맞춰 미국의 각 주도 디지털 자산 전략준비자산화를 진행 중이며, 미국의 움직임을 견제하고자 러시아와 중국도 비트코인 관련 움직임을 보인다. ‘비트코인 우주 경쟁’의 가시화가 임박한 것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전 세계 공습은 이미 진행 중이다. 의회에서는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안과 기본법(market structure bill) 입안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모두가 ‘설마’라고 부정하는 동안, 미국은 디지털 자산을 통한 새로운 경제 패권을 범국가적으로 진행 중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사기이며 거품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무엇을 얼마큼 제한적으로 허용해줘야 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은 아닐까?
트럼프는 작년 7월 내슈빌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우리는 규정을 만들 것이다. 이제부터는 업계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업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규정을 만들 것이다. (We will have regulations, but from now on the rules will be written by people who love your industry, not hate your industry)” 트럼프는 그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우리가 반드시 참고해야 할 선진사례다.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