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페이퍼컴퍼니 만들어 자산 이전하면 절세?…자칫하면 낭패본다 [가온의 패밀리오피스 리포트]

5 days ago 7

해외법인·해외신탁이 무조건적 절세가 아닌 이유
국내 과세당국에 CFC 제도 있어...조세회피 차단
해외법인이 독립적 '경제적 실체' 갖췄는지가 중요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중견기업 오너 C회장은 최근 지인으로부터 한가지 제안을 받았다. 싱가포르, 홍콩, 버진아일랜드(BVI) 등에 해외법인을 세우고 그 위에 해외신탁을 얹어 국내 자산을 이전하면 세금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과연 그럴까?

해외법인 설립, CFC 룰과 실질과세의 덫

최근 고액자산가 및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미국 LLC(Limited Liability Company), 싱가포르 VCC(Variable Capital Company), 홍콩 투자법인 등 다양한 해외 투자구조를 활용한 글로벌 자산관리 수요가 늘고 있다. 그러나 해외법인을 세웠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과세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조세피난처나 저세율 국가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자산을 이전하면, 실제 배당을 실행하기 전까지는 국내 과세를 이연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국내 세법은 이러한 조세회피를 차단하기 위해 ‘해외현지법인 유보소득 과세제도(CFC, Controlled Foreign Corporation Rules)’라는 강력한 방어막을 두고 있다.

CFC 제도는 내국인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외국법인이 저세율 국가에 소재하면서 상당한 유보소득을 보유하고 있을 때 적용된다. 특히 해당법인이 정상적인 사업 활동 없이 이자, 배당 등 수동적 소득(Passive Income)에 의존하는 경우, 실제 배당 여부와 무관하게 그 유보소득을 국내 지배주주가 배당받은 것으로 간주해 과세한다.

실무상 핵심 쟁점은 해외법인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해당 법인이 독립적인 경제적 실체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다. 만약 해외법인이 물리적인 현지 사무실이나 인력, 독자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단순한 자산보유법인이나 투자회사(SPC)의 역할만 수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 투자 판단과 자금 관리, 주요 계약 체결 등 핵심 의사결정이 모두 국내에서 이뤄지고 있다면, 해외에 법인의 외형을 갖추었다는 사정만으로는 국제조세 리스크를 피하기 어렵다.

실무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미국 LLC의 경우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미국 세법상 LLC는 파트너십과 법인 중 과세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Check-the-box) 구조지만, 한국 과세실무에서는 독립된 외국법인으로 보아 문제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내 거주자가 현지에 LLC를 설립해 두고도 사실상 모든 운용과 통제를 국내에서 수행한다면, 과세당국은 해당 LLC를 투자도관 또는 명목상 자산보유법인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패밀리오피스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싱가포르 VCC도 예외가 아니다. VCC는 하위 펀드 간 자산과 부채를 엄격하게 분리할 수 있어 글로벌 자산 배분을 위한 투자 플랫폼으로서의 장점이 매우 크다. 그러나 해당 VCC가 정상적인 펀드 운용 기구로서의 실체를 갖추지 못한 채 가족 자산만 담아두는 프라이빗 금고 역할에 머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현지의 독립된 운용 주체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고 실질적인 투자 의사결정을 국내 거주자가 수행하는 구조라면 실질귀속 및 유보소득 과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홍콩 법인 역시 여전히 아시아 투자 허브로 활용되지만, 최근 국제 조세환경 변화와 정보교환 강화로 인해 과거와 같은 단순 절세 구조는 점차 통하지 않게 됐다. 과세당국은 홍콩 법인의 실질 관리장소, 임직원 현황, 의사결정 구조 및 자금 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실질사업성이 부족한 경우 적극적으로 CFC 규정을 적용하는 추세다.

해외신탁은 더 이상 은닉처가 아니다

 뉴스1

출처: 뉴스1

법인을 거치지 않고 해외 신탁회사에 자산 명의를 이전하는 해외신탁(Offshore Trust) 역시 더 이상 과세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과거에는 신탁의 특성상 겉으로 드러나는 명의자와 실질적 소유자가 분리돼 자산은닉이나 상속·증여세 회피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제 그 장막은 완전히 걷혔다. 당장 올해 6월부터 해외신탁명세서 제출의무가 신설돼 과세당국의 감시망이 한층 촘촘해졌다.

세무적 판단의 핵심은 신탁의 외형이 아니라 위탁자의 실질적 지배·통제권 유무다. 국내 거주자인 위탁자가 신탁계약의 해지권, 수익자 변경권, 신탁재산 처분권 등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면, 세법은 이를 명의와 무관하게 위탁자 본인의 재산으로 간주한다. 이 경우 신탁 설정일부터 종료일까지 매년 해외신탁명세서를 제출해야 하며, 위탁자 사망시 해당 신탁재산은 국내 상속세 과세가액에 전액 합산된다.

반대로 자녀 등을 수익자로 지정하고 통제권을 확정적으로 이전해 실질적 재산권이 넘어갔다고 인정받는다면, 신탁 설정 시점에 즉각적인 증여세가 부과된다. 이 경우 매년 명세서를 제출할 의무는 면제되지만, 신탁이 설정된 해당 과세기간에는 반드시 한 차례 명세서를 제해야 한다. 결국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있든 포기하든, 과세당국의 감시망을 피할 길은 없어진 셈이다.

“어디에 세웠는가”에서 “누가 지배하는가”로

해외 페이퍼컴퍼니 만들어 자산 이전하면 절세?…자칫하면 낭패본다 [가온의 패밀리오피스 리포트]

이러한 세법 변화의 이면에는 국제공조라는 거대한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다자간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CRS, Common Reporting Standard)이 본격화되면서 각국 과세당국은 역외 금융자산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있다.

오늘날 과세당국은 해외법인, 해외신탁, 해외금융계좌를 단편적으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와 자금 흐름을 통합적으로 분석해 자산의 실질 귀속자를 추적해 낸다. 결국 최근 국제조세 환경에서는 “어디에 구조를 만들었는가”보다 “누가 실질적으로 지배·통제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글로벌 자산관리 시장의 트렌드도 이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국가간 세율차이를 활용한 절세 기법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구조의 안정성과 컴플라이언스가 최우선 고려 대상이 됐다. 구조가 유지되는 전 과정이 문서화 돼야 하고, 승계 과정에서의 법적 안정성도 담보돼야 한다. 특히 CFC 규정은 실제 배당 여부와 무관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초기 구조 설계 단계부터 세무·법률·승계 이슈를 통합적으로 검토하는 접근이 필수적이다.

결국 앞으로의 글로벌 자산관리는 해외법인이나 해외신탁의 존재 자체에 있지 않다. 해당 구조가 명확한 경제적 실체와 사업 목적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그 정당성을 과세당국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자산의 안전을 담보하는 시대다.

한경 프리미엄9의 모든 콘텐츠는 한국경제신문의 저작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사전 허가 없는 무단 전재·복제·배포·캡처 공유·AI 학습 활용 및 상업적 이용을 금합니다.
위반 시 서비스 이용 제한 및 민형사상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