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패션 트렌드로 떠오른 아버지의 옷, ‘대디코어’

6 hours ago 3

[패션 NOW]
편안함-실용성 앞세워 패션계 주도… 낙낙한 셔츠와 슬랙스, 재킷 주목
간결한 실루엣에 고급스러운 소재… 유행 넘어 세련된 일상룩으로 각광

매일 아침 집을 나서던 아버지의 출근룩처럼 익숙한 ‘대디코어(Daddycore)’가 올해 다시 한 번 패션의 정점에 섰다.

대디코어란 말 그대로 아버지 세대의 옷장에서 볼 법한 아이템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을 뜻한다. 낙낙한 셔츠와 슬랙스, 클래식한 재킷 등이 이를 대표하는 요소다. 핵심은 단연 편안함과 실용성. 패션계에 젠더리스 트렌드가 확산되며 좁고 타이트한 실루엣보다는 여유 있는 옷차림이 하나의 스타일 미학으로 자리 잡았고, 그 흐름 속에서 대디코어는 자연스럽게 주류로 급부상했다.

대디코어는 비교적 최근에 이름이 붙여졌지만 그 뿌리는 깊고 탄탄하다. 원형은 1980, 90년대 전형적인 아버지의 일상복에서 비롯됐다. 본래 멋을 위한 옷이라기보다는 실용성을 우선시한 생활복에 가까웠다. 촌스럽지만 솔직한 스타일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담백하고 정제된 멋으로 느껴진다.

대디코어 트렌드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건 2010년대 중반 ‘놈코어(Normcore)’가 등장하면서다. ‘튀지 않는 옷이 오히려 쿨하다’는 패션 철학 아래 무지 티셔츠와 청바지, 스니커즈 같은 기본 아이템이 스타일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이후 애슬레저와 워크웨어 같은 기능성을 기반으로 한 ‘아버지의 옷’이 점차 트렌디한 무드로 재해석되며 런웨이를 장식하게 된다.

포문을 연 건 2018년 봄여름(SS) 시즌 발렌시아가 컬렉션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는 프랑스 파리의 한적한 공원에서 쇼를 열고, 실제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 런웨이에 등장하는 ‘신박한’ 장면을 연출했다. 낡은 블레이저에 허리를 한껏 추켜세운 청바지, 형형색색의 바람막이 점퍼와 투박한 운동화까지, 패션에 무관심한 우리네 아버지처럼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하듯 런웨이를 걷는 그들의 모습은 패션계에 또 한 번의 파격을 선사하며 대디코어의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됐다.

여유 있는 옷차림이 주목받으면서 ‘대디코어’ 룩을 런웨이에서 선보이는 패션 하우스가 늘고 있다. 생로랑은 과장된 어깨 라인의 슈트를 내세워 우아한 방식으로 대디코어를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왼쪽 사진). 프라다는 셔츠와 슬랙스를 통해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요소를 강조했고(가운데 사진), 로에베는 슈트에 셔링과 슬릿 디테일을 더한 실루엣으로 위트를 더했다(오른쪽 사진). 각 브랜드 제공

여유 있는 옷차림이 주목받으면서 ‘대디코어’ 룩을 런웨이에서 선보이는 패션 하우스가 늘고 있다. 생로랑은 과장된 어깨 라인의 슈트를 내세워 우아한 방식으로 대디코어를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왼쪽 사진). 프라다는 셔츠와 슬랙스를 통해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요소를 강조했고(가운데 사진), 로에베는 슈트에 셔링과 슬릿 디테일을 더한 실루엣으로 위트를 더했다(오른쪽 사진). 각 브랜드 제공
이후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아버지의 옷장에서 영감을 받은 피스들을 쏟아내며 트렌드를 이끌었다. 이전까지가 과장된 실루엣과 유머러스한 스타일링으로 투박한 멋을 강조했다면, 이번 시즌의 대디코어는 멋과 실용성 사이의 균형에 방점을 찍는다. 과도한 볼륨은 덜어내고, 실루엣은 더욱 간결해졌으며, 소재는 한층 고급스럽다. 컬러는 차분한 뉴트럴 톤으로 정제된 것이 특징이다. 생로랑은 이번 시즌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대디코어를 해석했다. 고전적인 턱시도에서 영감을 받은 과장된 어깨 라인의 슈트를 컬렉션 전반에 내세우며 무심한 듯 섬세한 아버지의 멋을 담아냈다. 로에베와 빅토리아 베컴은 슈트에 셔링과 슬릿 디테일을 더한 구조적인 실루엣으로 위트를 더했고,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낸 베스트 슈트 룩으로 품격을 더한 피터 도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디코어의 본질인 편안함을 유지하면서도 세련된 요소를 강조한 프라다를 필두로, 신예 디자이너인 로리 윌리엄 도허티와 에밀리아 윅스테드는 여유로운 셔츠와 슬랙스를 통해 오피스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트렌드의 흐름에 동참했다. 이 외에도 폴로 셔츠 위에 셔츠를 레이어드하고 오버사이즈 트렌치코트를 툭 하니 걸쳐 예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 가브리엘라 허스트, 고전적인 스커트 슈트 룩에 트렌치코트를 더해 노스탤지어를 지켜낸 스텔라 매카트니까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아버지’를 소환했다.

아버지의 옷장에서 출발한 대디코어는 이제 일상 속에서 소화 가능한 세련된 스타일로 각광받고 있다. 트렌드 수명이 짧아진 지금, 대디코어는 오히려 익숙하고 오래된 것에서 취향을 길어 올리고 이를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생명력을 이어 나가고 있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개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스타일 코드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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