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서울 강남구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이정은(29)은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임하는 각오를 이렇게 말했다. 2016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데뷔한 이정은은 2019년부터는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뛰고 있는 ‘10년차’ 베테랑 골퍼인데, 루키와 같은 심정으로 올 시즌을 임하겠다는 것이다.
이정은은 KLPGA 투어에 동명 이름이 많아 등록명이 이정은6였다. 당시 한참 핫하게 떠올라 ‘핫식스’로 불렸다. 2019년 LPGA투어에 데뷔한 이정은은 그해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5년의 시드권을 확보했는데, 이 시드권이 올 시즌으로 만료된다. 그래서 “루키처럼 다시 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시드권이 올해 종료되는 것은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LPGA투어에서 모든 선수의 시드권을 1년 연장해준 덕분이다. 이정은은 “난 국내에서도 장타를 치는 선수도, 쇼트게임이 강한 선수도 아니었다. 대신 정확도만큼은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이 장점이 사라지니 더이상 미국 무대에서 우승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이정은은 데뷔 해에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하며 신인왕을 차지하는 등 화려한 데뷔를 한 이후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20개 대회에 참가해 절반인 10번의 컷 탈락을 했다. 이정은이 국내외 무대를 통틀어 프로 생활 중 가장 많은 컷 탈락을 한 시즌이었다. 이정은은 “지난해에 초반 대회에 거의 예선 통과를 하지 못해 정말 힘들었다. 또 미국 무대에 데뷔한 후 처음으로 마지막 시드권을 남겨두고 임하는 해이기 때문에 압박이 컸다”며 “이 때문에 골프에 변화를 주는 것을 싫어하는 내 성향을 버리고 올 시즌을 앞두고는 내가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바꿨다”고 말했다.이정은은 가장 먼저 스윙 코치부터 바꿨다. 이정은은 “기존 코치와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지만 샷의 정확도가 올라오지 않았다”며 “그래서 과감히 미국 프로님으로 스윙 코치를 바꿨는데, 코치님이 나를 보자마자 ‘공을 띄워서 쳐보자’란 조언에 큰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이정은이 새로 바꾼 코치의 첫 마디에 믿음이 간 이유는 자신이 몇 년간 고민하던 부분을 한 번에 잡아줬기 때문이다. 이정은은 “샷이 흔들리면서 공의 탄도가 낮아졌는데, 미국은 그린 대부분이 딱딱해서 탄도가 낮게 가면 그린 밖으로 다 튀어나간다”며 “단순하게 공을 띄워쳐보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다운스윙 때 공간을 넓게 활용해 이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자신을 몇 년간 괴롭히던 탄도를 잡으니 올 시즌 첫 대회부터 10위권의 성적을 받았다. 이정은은 올 시즌 첫 출전 대회로 2월 10일 끝난 LPGA투어 파운더스컵을 택했는데, 이 대회에서 공동 13위를 했다. 이정은이 LPGA투어에서 10위권의 성적을 받은 것은 지난해 6월 숍라이트 LPGA 클래식 이후 약 8개월 만이다. 이정은은 “올해 내가 목표로 잡은 것이 초반 대회에서부터 예선 통과를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었다”며 “첫 대회에서부터 예선 통과를 넘어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받아 정말 만족스러운 출발이었다”고 말했다.
첫 단추를 잘 꿴 이정은은 자신이 미국 무대에 진출한 뒤 처음으로 6주간 겨울훈련을 한 로스앤젤레스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노린다. 이정은은 18일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엘 카벨레로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리는 LPGA투어 JM 이글 LA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이정은은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스윙의 리듬을 대회장에서도 연습장에서처럼 똑같이 내 몸에 익히는 것이다. 올 시즌 중반이 지나가기 이전에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며 “지금 상황에서 몇 승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상위권 성적이 많길 바라고, 시드권 유지를 넘어 ‘아시안스윙’ 전체 대회에 참가 가능한 상금순위 60위 이내가 현실적 목표”라고 말했다.김정훈 기자 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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