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한국 증시) 탈출은 지능순입니다. 장기 투자는 미국 주식으로 하는 겁니다.” “한두 번 속나요. 주가가 오르면 또 물적분할, 유상증자 폭탄 떨어질 것 아닙니까.”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국내 증시가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국내 투자자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구독자 수십만 명의 유튜브 주식투자 채널에선 코스피지수 상승세가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의 뿌리 깊은 ‘국장 불신’을 걷어내지 못하면 코스피지수 5000 시대가 요원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장 불신 키운 K바이오 악몽 사태
2016년 9월 30일 오전 9시30분, 국내 바이오주가 일제히 폭락하기 시작했다. 한미약품이 다국적 제약회사와 맺은 항암제 기술수출 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한 게 발단이었다. 한미약품 주가는 당일 18% 급락했다.
한미약품에서 관련 업무를 맡았던 직원들은 공시 전에 계약 해지 정보를 옆 부서 동료와 가족들에게 은밀히 알렸다. 하지만 소문은 전화와 메신저로 삽시간에 퍼졌다. 일부 기관투자가는 주가가 떨어지면 이익을 보는 공매도로 ‘떼돈’을 벌었다. 이날 한미약품 공매도량은 약 10만 주로, 상장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검찰 조사 결과 175명이 적발됐지만, 증권가에선 실제 부당이득을 취한 사람이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국내 주식시장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을 뿌리째 뒤흔든 ‘한미약품 사태’다. 이후에도 코오롱티슈진, 신라젠, HLB 등을 통해 ‘K바이오 악몽 사태’가 반복되자 많은 개인투자자가 국내 증시를 등졌다.
미공개 정보 이용뿐만이 아니다. 2차전지 테마를 등에 업고 폭등한 금양은 2023년 몽골 광산 기업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매출과 영업이익 전망치를 각각 4024억원, 1609억원으로 공시했다. 하지만 이듬해 각각 66억원과 13억원으로 대폭 정정해 공시했다. 한때 20만원에 육박한 금양 주가는 9900원까지 떨어졌고, 현재 거래 정지 상태다. 2023년 발생한 ‘영풍제지 사태’는 단일 주가 조작으론 역대 최대 규모였다. 증권계좌 330개를 이용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올린 후 6600억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챙긴 사실이 드러났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쪼개기 상장
‘꼼수 유상증자’ 역시 개인투자자가 국장을 불신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테마주’로 분류돼 주가가 급등한 상지건설과 형지I&C, 형지글로벌 등이 대표적이다. 주가가 뛰면 유상증자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이 늘어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증을 통해 신주를 발행하면 주식 수가 늘기 때문에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가 희석된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이지만 본업과 무관한 기업 인수나 부채 상환을 위한 유증 사례가 유독 많다는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회사를 물적분할해 상장하는 ‘쪼개기 상장’도 마찬가지다. 한때 국민주로 불리던 카카오는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 계열사를 잇달아 상장시키며 논란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모회사 가치가 하락하자 투자자 불만이 커졌다.
개인투자자를 국내 시장으로 복귀시키려면 시장 감시와 불공정 거래 처벌 강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얘기다. 외국인 매수세만으로는 코스피지수 상승세가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전날 증시 불공정 거래 엄벌 의지를 밝혔지만 개인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김홍식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은 “(대통령 방문 이후) 관련 조직 및 인력 확충과 시스템 개선 방안을 집중 논의하고 있다”며 “특히 불공정 거래에 대한 초기 대응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증권사 대표는 “강력한 처벌 사례가 나와야 개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만수/양지윤/맹진규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