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섭 칼럼]노무현식 단일화와 김문수식 단일화엔 차이가 있다

3 weeks ago 16

역선택 방지 이견으로 결렬된 金-韓 단일화
盧, 2002년 때 지지율 밀려도 여론조사 수용
후보 된 金, 이재명과 한판 치를 승부수 있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 간 단일화 협상은 또 그놈의 ‘역(逆)선택 방지 조항’ 때문에 결렬됐고, 결국 김 후보의 최종 후보 등록으로 결론 났다. 김 후보 측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까지 포함한 여론조사를, 한 전 총리 측은 국민의힘 경선 룰처럼 민주당 지지층을 제외하는 역선택 방지 조항 적용을 주장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김-한 단일화를 ‘정략적 야합’으로 프레임 했지만 사실 단일화 시도 자체를 비난할 순 없다. 특히 자신들이 그토록 증오한 박정희 정권의 2인자나 재벌 총수와 각각 손잡았던 ‘DJP 연합’,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로 집권에 성공했던 민주당이 비난할 일은 아닌 듯싶다.

민주당 쪽 단일화가 항상 아름답지도 않았다. 2002년 대선 당시 월드컵 열풍으로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후보가 급상승하고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현 민주당) 후보가 3위로 추락하자 민주당 내에서도 지난주 국민의힘처럼 후보 사퇴론, 교체론이 터져 나왔다. 경선에서 노 후보에게 패했던 한화갑 대표 등 당 지도부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친노 인사들은 노 후보가 ‘후보 교체’ 당할 가능성에 대비해 ‘개혁국민정당’을 만들었고, 수십 명의 민주당 의원은 단일화 협의체를 구성하고 스무 명 가까이는 탈당까지 했다.

결국 노 후보는 단일화에 응했고 여론조사를 통해 극적으로 최종 후보가 됐다. 하지만 유세 현장에서 ‘차기는 정몽준’이라는 피켓을 본 노 후보가 “정동영, 추미애도 있다”며 불쾌감을 표하자 이를 배반으로 인식한 정 후보 측이 선거 전날 밤 지지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노-정 단일화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한 단일화와 노-정 단일화는 유사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있다. 분명히 김-한 단일화 실패의 단초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제공했다. 자신들이 영입한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지는 조기대선에서조차 또다시 ‘킹메이커’가 되겠다는 강박증의 기저에는 친윤의 ‘당권 유지욕’이 있다.

그럼에도 역선택에 의존해 국민의힘 후보 지위를 유지하려 한 김 후보식 단일화 전략은 ‘노무현식’과 차이가 있다. 사실 국민의힘 경선에서 역선택이 허용됐다면 김 후보는 후보로 선출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경선 중이던 4월 22∼24일 한국리서치 조사(KBS 의뢰) ‘국힘 후보 적합도’ 설문에서 김 후보는 12%로 오차범위 내이나 한동훈 전 대표(16%), 홍준표 전 대구시장(15%)에게 뒤졌다. 이는 민주당 지지층에서 11% 대 2%로 한 전 대표에게 크게 뒤진 것이 주원인이다. 단일화 논의가 한창이던 5월 6∼8일 한국리서치 조사(KBS 의뢰) ‘단일 후보 적합도’ 설문에서도 민주당 지지층의 60%가 김 후보를, 13%가 한 전 총리를 꼽았다. 민주당 지지층은 일관되게 가장 쉬운 상대를 ‘최적의 국민의힘 후보’로 꼽은 것이다.

미국에서도 한 유권자가 모든 정당의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일괄형 예비선거(blanket primary)’는 애초에 실시하는 주가 매우 드물다. 또 캘리포니아주와 워싱턴주에서 각각 2000년과 2003년 위헌 결정을 받았다. 경쟁 정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은 경선을 치르는 정당의 단체결사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 후보는 자신을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던 정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해 위험 부담이 높은 여론조사를 수용했다. 조사 문구도 원래 자신들의 안에서 일정 부분 양보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대항할’ 단일 후보로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로 정해졌다. 또 역선택 방지를 위해 이회창 후보 지지도 결과의 최저치 오차범위 하한선 이하가 나올 경우 무효로 하기로 정했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지지층이 겹치는 정 후보보다 노 후보를 쉬운 상대로 생각한다면 노 후보 자신이 역선택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음에도 일정 부분 위험 부담을 감수한 승부수였다.

필자는 이번 조기 대선 과정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전수를 취합해 개별 조사업체의 경향성을 보정한 지지율 추정값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김-한 단일화가 파국을 맞기 직전인 5월 2일까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조사 전수를 분석해 보면, 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김문수-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3자 구도에서 각각의 지지율은 45.9%, 27.1%, 7.3%로 추정됐다. 김 후보로서는 ‘반(反)이재명 빅텐트’를 구축하고 부동층 표 대부분을 흡수해야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다. 본선 경쟁력에서 한 전 총리에게 뒤지는 것으로 평가받던 상황에서 엄청난 진통을 겪고 국민의힘 후보 자리를 지켜 낸 김 후보에게 남은 카드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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