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스하키와 함께 30년…인생과 경영, 사랑의 지혜를 얻다 [내손자 클럽]

2 days ago 4

글쓰기 고수들의 신박한 인생 기록 비법-6회
HL그룹 정몽원 회장

최근 자신의 인생을 자서전이나 회고록으로 남기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글감이 되는 인생의 자료를 잘 모아두어야 합니다. 글쓰기 고수들의 신박한 인생 기록 비법을 내·손·자(내 손으로 자서전 쓰기) 클럽이 소개합니다.


“혹자는 ‘한국 아이스하키는 정몽원 HL 그룹 회장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과찬이다. (중략) 그러나 ‘지금 정몽원의 모습은 (아내) 홍인화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은 확실한 명제라고 믿는다.”

한 개인이 지나간 삶을 글로 회고할 때, 사랑하는 대상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인 전략이다. 자료 모으기와 집필 과정에 넣을 것과 버릴 것을 선택하기 쉽다. 애정의 깊이만큼 기억도 생생하고 표현도 리얼하게 된다. 정 회장이 최근 펴낸 ‘한국도 아이스하키 합니다(브레인스토어 펴냄)’는 그가 1994년부터 30년 넘게 애정한 한국 아이스하키, 그 길을 함께 해준 고마운 사람들에 포커스를 맞춘 성공작이다. 정 회장보다 더 하키를 사랑했다는 아내 홍인화 씨에 대한 헌사는 본문 마지막에 ‘스페셜’이라는 꼭지로 실려 극치감을 준다. 읽다 보면 라벨의 볼레로 마지막 대목을 듣는 듯한 느낌이다.

 『한국도 아이스하키 합니다』(정몽원 지음 / 브레인스토어 펴냄)

HL안양 아이스링크에서 아내 홍인화 씨와 함께한 정몽원 회장. 이미지 출처: 『한국도 아이스하키 합니다』(정몽원 지음 / 브레인스토어 펴냄)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을 지내며 한국 아이스하키를 이끈 정 회장은 1994년 국내 최초의 아이스하키 실업팀 HL안양을 창단하면서 한국 아이스하키라는 공적 역사에 뛰어들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남녀 대표팀을 출전시키는 등 정상에 올려놓기까지 개인의 역사가 책 속에 오롯이 녹아있다. 주요 경기장면과 우여곡절, 관련된 사람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는 그가 얼마나 이 일에 몰입했는지 보여준다.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과 운영 비화, 일테면 북한 선수들이 스케이트도 스틱도 하나 없이 몸만 내려와 당황했던 이야기 등은 남북관계사의 훌륭한 사료다. 그래서 이 책은 에세이라기보다는 회고록에 가깝다.

‘왜 회고록을 쓰는가’에 대한 필자 스스로의 답변도 정답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아이스하키와 함께 한 30년 세월을 돌아보니, 불현듯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을 뿐, 지난 일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이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스하키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미래 발전 모델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지난날부터 돌아보고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도 아이스하키 합니다』(정몽원 지음 / 브레인스토어 펴냄)

2017년 4월 강릉하키센터에서 맞대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이미지 출처: 『한국도 아이스하키 합니다』(정몽원 지음 / 브레인스토어 펴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대답도 훌륭하다. 비인기 종목으로 인식되는 아이스하키를 알리기 위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최대한 재미있고 흥미롭게 책을 구성하자는 뜻에서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을 완전히 빼고, 그룹 회장으로서의 권위, 체면, 체통 같은 것은 완전히 내려놓고 팬의 마음으로 썼다”는 것이다.저자의 의도대로 책은 쉽고 재밌다. 한 번 잡으면 술술 읽힌다. 하지만 그냥 경험의 묶음은 전혀 아니다. 1978년 한라해운에 입사해 HL그룹 회장에 오르며 경제 현장을 누빈 베테랑 기업인의 내공이 곳곳에 스며있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부흥이라는 목표를 향해 30년을 달린 경험을 재료로 인생론과 경영론을 풀어놓는 것이다.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이하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정 회장의 아이스하키 인생 초반은 난관과 극복의 연속이다. 젊은 직원의 아이디어로 실업팀을 만들기로 했지만 “왜 하필 비인기 종목이냐”는 임원들의 비판에 부딪히자 그들을 부부동반으로 ‘볼쇼이 아이스쇼’에 초대해 빙상종목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고 한다. IMF경제난으로 몇 안 되던 실업팀들이 문을 닫아 국내 리그가 불가능해지자 2003년 비슷한 처지의 일본 팀들과 아시아리그를 출범시킨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맞붙은 일본 팀에 연전연패하자 화가 났지만 이렇게 마음을 다스렸다고 한다. “차이를 일단 인정해야 한다. 일단 마음을 비우자. 1년에 한 골씩 점수차를 줄여서 10년 안에는 일본을 이기자.”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상대방을 이기는 전략인 ‘지구전’은 7년 만인 2003년 일본을 꺾고 아시아리그 챔피언이 되는 성공을 거둠으로써 성공한다. 올림픽에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출전시켜야 한다는 소명을 느끼고 2013년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이 된 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은 가히 MBA의 사례연구 수준이다.

 『한국도 아이스하키 합니다』(정몽원 지음 / 브레인스토어 펴냄)

2013년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영국을 꺾은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 이미지 출처: 『한국도 아이스하키 합니다』(정몽원 지음 / 브레인스토어 펴냄)

성과를 위해서는 적절한 투자가 있어야 하며, 노력하는 자에게 운도 따르고, 존경을 받으려면 실력을 갖춰야 하며, 지식격차를 가진 선진국 전문가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교훈이 경험과 함께 제시된다. 경기 전 선수들과 일일이 주먹을 부딪치며 기운을 불어넣는 현장 리더십을 발휘하고, 직접 방송에 출연하는 등 언론을 통한 아이스하키 대중화에 노력하는 대목은 그가 왜 젊은 직원 및 언론과 막역하게 소통하는 기업인으로 평가받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왜 아이스하키에 꽂힌 것일까?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의 여러 부분이 인생과 참 많이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스하키는 모든 단체 종목을 통틀어 멤버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고 자기 몫을 해내야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팀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선수들을 조화롭게 운용해야 한다. 인재의 능력을 파악하고 조직을 잘 관리해야 한다. 라커룸의 분위기가 승패로 직결되는 것이다.”

저자는 또 “늘 혁신해야 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생명이라는 점에서 하키와 기업 경영은 닮은 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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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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