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디지털 스레드가 바꾸는 제조의 미래

3 hours ago 2

[한경에세이] 디지털 스레드가 바꾸는 제조의 미래

그동안 정보기술(IT)이 명확한 목표 아래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에 집중했다면, 오늘날의 제조업은 수만 개의 변수가 유기적으로 얽힌 복잡계를 관리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설계의 작은 변화가 이제 생산 공정은 물론 고객 서비스에까지 실시간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제조업에서의 디지털 혁신이 단순히 ‘제작’을 넘어 가상과 실제를 완벽히 통합하는 시도까지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나는 지멘스 입사 후 개방형 디지털 비즈니스 플랫폼인 ‘지멘스 엑셀레이터(Siemens Xcelerator)’를 접하며 이러한 변화를 실감했다. 지멘스가 산업용 시뮬레이션 기업인 알테어(Altair)를 인수한 뒤 엔지니어링 기술과 인공지능(AI) 간 결합으로 과거 따로 움직이던 설계, 생산, 운영 과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를 IT 업계에선 ‘디지털 스레드(Digital Thread)’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제품의 첫 아이디어부터 실제 운영까지 모든 정보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구조를 뜻한다. 이렇게 연결된 환경에서는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이를 예측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향으로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국 제품 수명주기 관리 전반이 더 빠르고 정교하게 돌아갈 수 있다.

HD현대중공업, 비야디(BYD) 등 글로벌 기업과 협업할 기회도 있었다. 이들 기업과 함께 일하며 느낀 점은 바로 ‘리더 중심 혁신’의 중요성이었다. HD현대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설계부터 건조까지 모든 프로세스의 생산성을 높이고 오류 가능성을 사전 차단했다. BYD는 최고경영진이 직접 디지털 전환 과제를 주도하며 조직 간 사일로(silo·단절)를 타파했다. 모두 리더가 직접 디지털 스레드를 관리함으로써 개발 시간 단축, 원가 절감, 품질 제고 등을 동시에 달성하는 속도 경영의 정수를 보여줬다.

경영자의 역할은 “AI를 기반으로 효율을 높이라”는 선언적 지시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진정한 혁신은 사업부별로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현장의 자원 부족이나 고질적인 조직 간 단절 문제를 즉각 해소하는 리더의 실천 의지에서 시작된다. 진정한 AX(AI 전환)를 위해선 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기업 전반을 아우르는 ‘엔드 투 엔드(End-to-End) 혁신을 총괄할 단일 컨트롤타워 구축이 시급하다.

국내 제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 중심 경영을 통해 이미 각 부서별로 효율화된 업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제 개별 부문의 탁월함을 넘어, 이 파편화된 강점을 하나의 디지털 스레드로 엮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가 갖춘 탄탄한 제조 기반 위에 AI와 디지털 트윈을 결합해 전체 가치 사슬을 최적화한다면, 한국 제조업은 트렌드를 좇는 추격자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다. 기존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조직의 구조와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