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컨슈머 W세대 잡기 나선 기업들
고급 시니어 주택도 인기 높아
실버산업 2030년 168조로 커져
식품 교육업계 시니어 잡기 경쟁
서울 강남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위치한 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 공사현장.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은 고급 시니어 레지던스 단지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요즘 시니어 레지던스는 외딴 섬처럼 느껴졌던 기존 실버 주택과는 차이가 확연하다. 레지던스 내에 노인만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자녀 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오피스텔을 함께 지어 공동 생활권을 조성했다. 사우나와 수영장 등 편의시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시행을 맡은 엠디엠플러스의 임찬영 개발부문 주임은 “2인 기준 부담금이 한달에 320만원 수준이지만 지난해 모집한 211가구 실버타운의 경우 80% 이상 계약이 완료됐다”고 귀띔했다.
한화건설이 부산 기장군에 짓는 ‘VL라우어’, 롯데건설이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짓는 ‘VL르웨스트’는 하이엔드 시니어 레지던스를 표방한다. 두 곳 모두 롯데호텔에서 호텔급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각각 내년 1월, 10월 준공 예정인데 이미 90% 이상 임대 분양에 성공했다.
KB골든라이프케어가 운영 중인 위례빌리지는 1인실 기준 월 이용료가 300만원이 넘지만 입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조아영 위례빌리지 원장은 “현재 정원이 125명인데 대기 수요만 25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위례빌리지에 거주중인 80대 문영순(가명)씨는 “식사도 잘 나오고 교육 프로그램도 잘 짜여져 있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니어들을 위한 맞춤형 주택 수요는 넘쳐나지만 아직까지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들을 위한 각종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복지주택은 전국적으로 40개소, 정원은 9006명에 불과하다. 1000만명을 넘어선 고령 인구의 0.1% 수준에 그친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 중산층이나 여유를 가진 고령자들을 타깃으로 한 시니어 레지던스 개발 사업 열기가 뜨거울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사회가 초고령사회 초읽기에 들어서면서 이전 세대에 비해 높은 경제력을 갖춘 ‘W세대’의 의·식·주를 잡기 위한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으려는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은 1970~1980년대 경제 성장기를 거치며 축적해놓은 자산을 자녀를 위해 쓰기 보다 자신에게 투자하는데 적극적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국내 실버산업 규모가 2020년 72조원에서 2030년 168조원으로 늘 것으로 전망했다.
시니어들은 축적된 자본력을 바탕으로 ‘거주의 질’ 뿐만 아니라 상속·증여 같은 자산관리 서비스에도 관심이 높다. 하나금융그룹은 이같은 시니어들의 관심사를 감안해 특화 자산관리 서비스를 적극 내놓고 있다. ‘하나 더 넥스트’라는 시니어 특화 브랜드 아래에 하나은행·하나증권·하나생명보험 등 그룹 계열사들이 협업해 은퇴 설계, 상속·증여, 건강관리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존 시니어층뿐만 아니라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 이후 삶에 대한 준비에 관심 있는 고객까지 모두 잡겠다는 계획이다.
시니어들의 최고 관심사 중 하나는 ‘건강 관리’다. 헬스케어 장비와 건강기능식품 시장도 이에 주목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교원그룹은 지난 5월 시니어 대상 가정학습지 서비스인 ‘구몬 액티브라이프’를 출시했고, 현대그린푸드는 일반식보다 부드러운 고령층을 위한 시니어식단과 정기 배송 서비스까지 선보였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미 수년전부터 심각한 저출산으로 인해 분유 등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사업을 포기하고 고령자를 위한 건강기능식품으로 눈을 돌리는 식품기업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와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건강수명(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기간)은 65.8세로 전세계 평균(61.9세) 보다 높다.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추구하는 시니어들이 늘면서 생활체육으로 파크골프가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골프 못지않은 운동 효과에 저렴한 비용으로 칠 수 있다는 점이 인기 비결로 꼽힌다. 서울에서만 연간 100만명 가량이 파크골프장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405곳의 파크골프장이 들어섰고 120곳의 파크골프장을 조성 중이다. 여기에 투입된 비용만 5395억에 이른다. 7년 전 파크골프를 시작해 심판 자격증까지 취득했다는 정경일 씨(67·가명)는 “노인들의 생활 스포츠인 게이트볼 구장을 찾았던 이들이 이제는 파크 골프장으로 몰리고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