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 시골 소년, 심심함 속에 코딩을 만나다
15세에 실리콘밸리行…게임 하나가 바꾼 인생
친구들과 의기투합, 1조 게임회사 플레이코를 세우다
“타이밍도 실력이다”…유니콘을 만든 감각
학벌보다 프로젝트, 스펙보다 경험
“AI에게 내 생각은 못 맡겨”…글쓰기만은 직접 하는 이유
미국 중남부의 시골 테네시주에서 태어난 테디 크로스(Teddy Cross, 30)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전직 교사였던 어머니에게 홈스쿨링을 받으며 자랐고 소프트웨어 업계에 종사하는 아버지 덕에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이 일상이었던 그는 세상 지식의 대부분을 웹과 책을 통해 흡수했다. 본인 말마따나 “시골에서 사는 데다 학교에도 가지 않으니 친구가 별로 없고 할 일이 없어서” 레고와 플래시 게임에 빠져 지냈다. 과학과 공학 수업을 좋아했다. 레고를 조립하는 일이 머릿속에 있는 것을 현실로 구현하는 훈련이었다면 코딩은 그 자연스러운 연장선이었다. ●14세 소년, 게임 제작 콘테스트에 도전하다
테디가 열네 살이 된 2010년 무렵, HTML5가 새로운 웹 기술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HTML5는 플래시 같은 외부 플러그인 없이도 동영상 재생과 2D·3D 그래픽을 브라우저에서 곧바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기술의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게임 제작 콘테스트를 열었다. 이미 웹 기술에 상당한 지식이 있었던 테디는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바로 게임 제작에 착수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한 게임 개발사가 인턴 제안을 해왔고 열다섯 살의 테디는 실리콘 밸리에서 대학생 형들과 방값을 나눠 내며 정식 개발자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처음 부모님 곁을 떠나는 거라 솔직히 무서웠지만 부모님은 ‘좋은 기회’라며 등을 밀어줬고 이른 독립이 자신감의 가장 큰 뿌리가 됐다”고 회고했다.
●플레이코, 유니콘이 된 인스턴트 게임 회사
여러 스타트업을 거치며 내공을 쌓은 그는 2018년 경 소셜 게임 업체 징가(Zynga) 창업자 저스틴 왈드론, HTML5 웹소켓을 발명한 마이클 카터, 모바일 소셜게임 프로듀서인 다케시 오츠카와 의기투합해 ‘플레이코(Playco)’를 창업했다. 플레이코는 앱을 내려받지 않아도 브라우저에서 곧바로 실행되는 인스턴트 게임 플랫폼이다. 테디는 “모바일 게임은 기술적 한계 탓에 혼자 즐기는 솔로 게임 위주로 발전해왔다”며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이 쉽고 편하게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2020년 때마침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비대면·소셜 게임 수요가 폭발했다. 줌(Zoom) 화면 안에서 돌아가는 ‘Heads Up!’과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즐기는 ‘EverWing’ 같은 플레이코의 게임들이 전 세계적 흥행을 거뒀다. 화면 속 단어를 맞히는 추측 게임인 ‘Heads Up!’은 화상회의 전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는 용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시기에 플레이코는 조쉬 버클리, 세콰이어 캐피탈과 같은 실리콘밸리 유수의 투자사로부터 1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0억 달러의 유니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실리콘밸리는 학벌을 보지 않는다”
테디는 이처럼 큰 성공의 비결을 “타이밍이 좋았던 덕분”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훌륭해도 기술과 플랫폼, 시장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타이밍을 읽는 것 자체가 실력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와 동료들은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게임을 실험하며 모바일 소셜 게임의 가능성을 꾸준히 탐색해왔다. 웹소켓 기술로 실시간 멀티플레이가 가능해지고 모바일 브라우저가 고해상도 그래픽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시점을 누구보다 정확히 짚어냈다. 그 ‘감(感)’은 촘촘히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다.
그래서 테디는 요즘 실리콘밸리에서는 학벌이나 학위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는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학벌을 따지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가 공존했고, 피터 틸의 틸 펠로우십(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2년간 10만 달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꽤 도전적인 선택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거의 학위를 묻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대신 그가 강조하는 건 실전 경험이다. 자신이 만든 것, 자신이 이룬 성과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가 MBA를 했다고 하면 ‘그 시간에 제품을 개발하거나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왜 MBA를 택했는지 설명하라’는 분위기라고도 전했다. 인턴십 3~4회를 졸업 요건으로 못 박는 대학의 코업(co-op·산학 연계 현장 실습) 프로그램이 갈수록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소모임 대화, 커피숍의 우연한 만남에서 기회 찾아
인적 네트워크 역시 인사이트와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는 “커피숍에서의 우연한 만남이나 친구 집 부엌에서 함께 저녁을 지어 먹으며 나누는 소모임 대화에서 뜻밖의 인사이트를 많이 얻는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을 나누기 위해 테디는 다음달 11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디캠프(D-Camp)에서 열리는 ‘클로드 블룸’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클로드 블룸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개발자, 기획자, 비즈니스맨이 자유롭게 모여 인사이트를 나누고 네트워크를 쌓는 커뮤니티 행사다.
샘 올트먼, 안드레이 카파시, 피터 슈타인버거, 스티브 예그 같은 업계 리더들의 SNS와 팟캐스트를 챙겨보고 와이컴비네이터의 ‘해커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매일 업계 흐름을 읽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술과 비즈니스 동향을 파악하는 것에 더해 그 기술로 직접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며 가능성을 직접 맛보는 것이 AI 시대 급변하는 기술을 따라가는 핵심이라고 그는 강조했다.●“글쓰기만은 AI에게 맡기지 않는다”
기술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그가 AI 시대에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글쓰기다. 내부 문서나 고객용 포스팅에는 AI를 적극 활용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 글만큼은 반드시 직접 쓴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이 원칙 뒤에는 단순한 취향이 아닌 철학이 있다. AI가 점점 더 많은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는 현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그는 사고력과 정체성마저 AI에 넘기는 일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AI에게 생각을 맡기면 처음엔 편하고 좋겠지만 결국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AI 없이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이며 글쓰기는 그 훈련의 핵심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 시각은 아이들 교육관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이들이 AI를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에 의존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스스로 결정하고 의문을 품게 하고 탐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는 믿음이다.
테디의 부모님은 집에 TV를 두지 않았다. 영화는 볼 수 있었지만 컴퓨터 외의 화면은 없었다. 그 대신 테디에게 수영을 시켰고 레고를 쥐여줬다. 몸으로 해봤기에 좋아하게 됐고 만져봤기에 만드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그는 “호기심을 품고 스스로 탐구하며 답을 찾아가는 사람, 그게 바로 실리콘밸리가 원하는 인재”라고 강조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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