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 모서리가 찌그러져 있고 스카치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져 있더라고요. 열어보니 정품 충전기가 아니라 누군가 쓰던 충전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40대 소비자 김모 씨는 최근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미개봉 반품 상품'이라 표기된 정품 충전기를 2만6970원에 구매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는 중국 내수용 태블릿을 사용 중이었고, 국내 콘센트에 꽂기 어려워 정품 충전기를 따로 구입하려 했다. 검색 중 정가보다 3000원가량 저렴한 반품 상품이 눈에 띄었다. '미개봉이라면 믿을 만하겠지 싶어 주문했다'는 그는 다음날 제품을 받아보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박스 한쪽은 찌그러져 있었고, 비닐 포장 대신 일반 스카치테이프가 아무렇게나 붙어 있었던 것. 김 씨는 "혹시나 해서 개봉 전 사진을 찍어뒀는데, 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며 "누군가 쓰던 충전기를 그대로 넣어 반품한 것 같았다. 2만9000원에 자신의 양심을 팔아넘긴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품을 바꿔치기한 소비자도 문제지만, 검수조차 하지 않고 재판매한 업체도 책임이 있다. 양심 없는 구매자 때문에 애꿎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고 덧붙였다.
◇'반품 거지'·'쿠팡 거지'…신조어가 된 도덕 불감증
이 사건은 결코 드문 사례가 아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와 비슷한 '반품 피해담'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반품 상품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복불복'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문제의 출발점은 반품 제도를 악용하는 일부 소비자들이다. 이들은 제품을 충분히 사용하거나 구성품을 바꿔치기한 뒤 아무렇지 않게 환불을 요청한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반품 거지', '쿠팡 거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반품 정책의 허점을 파고들어 쓰던 물건을 돌려보내고, 환불받으면서도 죄책감은 없다. 커뮤니티에는 '한 번 써보고 반품하면 돈 굳는다', '하루 입고 환불받았다' 같은 글이 자랑처럼 올라온다.
쿠팡 반품센터에서 근무했다고 밝힌 한 누리꾼의 증언은 이런 '반품족'의 민낯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서비스직 할 때 봤던 도덕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왜 기업들이 무료 반품을 안 하는지 절실히 알게 됐다"고 했다. 이어 "음료수 묶음을 주문해 몇 개만 빼고 반품하거나, 거울·벽돌·조명 같은 깨지기 쉬운 물건을 거의 다 쓰고 부서진 채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폭로했다.
또 "조미료·쌀·잡곡을 먹을 만큼만 덜어 쓰고 다시 붙여 보내거나, 여름이 끝나면 한 달 가까이 쓴 선풍기가 트럭 단위로 반품된다. 전자제품을 바꿔치기하거나 빈 상자만 보내는 사람도 있다"며 "쿠팡이 일일이 고소하지 못한다는 점을 노린 전문가 수준의 반품족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개봉 반품 샀더니 중고품"…늘어나는 반품 피해담
이 같은 행태는 결국 선량한 소비자들의 피해를 유발한다. 한 여성은 '최상급 반품 화장품'을 샀는데 '뚜껑에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누가 바르고 반품한 것 같다'고 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소비자는 '천 기저귀에 사용 흔적이 남아 있었다'며 '찝찝해서 버렸다'고 했다.
현재 쿠팡 등 주요 커머스 업체들은 반품된 상품을 '미개봉·최상·상·중' 4단계로 나눠 재판매한다. 미개봉은 포장만 훼손된 새상품, 최상은 개봉은 됐지만, 사용감이 없는 상품, 상은 작은 흠집이 있을 수 있는 상품, 중은 일부 구성품이 누락되거나 교체된 상품이다.
하지만 이 구분은 기계가 아닌 검수자의 '눈대중'에 의존한다. 실제 사용 흔적이 남았거나 포장이 재조립된 제품도 '정상'으로 분류될 수 있어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 소비자는 '미개봉'이라 믿고 구매하지만, 그 안에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일부 소비자는 제품을 다 쓴 뒤에도 거리낌 없이 반품한다. 한 맘카페 회원은 "아이와 함께 만들려고 반품 상품으로 보석 십자수 세트를 샀는데, 열어보니 이미 완성된 완제품이었다"며 "누군가 다 붙이고 환불받은 뒤 업체가 그 물건을 '정상 상품'으로 다시 판매한 것인데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판매자들의 피해는 훨씬 크다. 한 건강식품 판매자는 "홍삼스틱 100포를 주문한 고객이 87포를 빼고 반품했다"며 "플랫폼은 고객 귀책으로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반품 비까지 부담시켰다"고 했다.
또 다른 판매자는 "단순 변심인데 제조 불량으로 반품 신청해놓고 제품을 한 달째 내놓지 않는다. 전화도 차단돼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명절·핼러윈마다 되풀이되는 '하루 반품족'의 기행
특히 명절이나 핼러윈등 행사 시즌에는 '반품족'의 몰지각한 행태가 절정을 이룬다. 추석과 설이 돌아오면 '한복 한 번 입고 반품' 논란이 빠지지 않는다. SNS에는 "한복 하루 입고 반품했다", "사진 찍고 바로 환불했다"는 글이 줄줄이 올라온다.
판매자들은 "입고 반품하는 사람들 때문에 새 상품이 모자라다"며 고개를 젓는다. "향수 냄새와 음식 냄새가 배어 있는 옷이 돌아온다", "사진만 찍고 돌려보낸 티가 난다"는 하소연도 이어진다.
최근 핼러윈 시즌에는 '하루 코스튬족'이 등장했다. 한 코스튬 판매자는 "김칫국물 자국이 그대로 남은 옷이 돌아왔다. 향수 냄새가 진동했는데도 반품 사유가 '단순 변심'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판매자는 "핼러윈에는 하루만 입고 돌려보내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예 판매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출 하락이 두려워 판매를 이어가는 업체가 대부분이라 피해는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하루 입은 옷이 다시 포장돼 '최상급 상품'으로 되돌아가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가 그것을 새 상품이라 믿고 구매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온라인에는 "어떤 업체가 반품 잘 받아주는지", "며칠 안에 환불 요청해야 하는지" 같은 '반품 꿀팁'이 공유되기도 한다.
이 같은 현상은 법의 허점을 노린 결과다. 현행 전자상거래법 제17조는 소비자가 상품을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주문을 취소하거나 반품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를 악용해 하루 입은 옷, 쓰던 소품, 장식품까지 아무렇지 않게 돌려보내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실제 반품 사기가 법정으로 간 사례도 있다. 지난해 쿠팡에서 4개월 동안 1638건을 주문하고 1600건 이상을 반품한 20대 여성이 약 3185만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돼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반품 정책을 악용해 재화를 부당 취득한 것은 명백한 사기행위"라고 판시했다.
◇소비자 보호 취지 벗어난 '반품족'…제도적 장치 시급
전문가들은 이런 '반품 거지', '쿠팡 거지' 문화가 온라인 유통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반품 제도는 본래 제품 하자나 단순 변심 등 소비자 보호를 위한 장치였지만, 최근에는 그 취지를 완전히 벗어난 행위들이 늘고 있다"며 "특정 기간에만 사용하는 한복이나 코스튬 등은 악용 소지가 크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반품을 제한하거나 소비자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등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일부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일으키고, 반품 상품으로 인해 다른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되고 있다"며 "당국에서도 의도적 반품을 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보다 엄격한 검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8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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