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가 상선에 한해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하다고 한 지 하루 만에 다시 빗장을 닫아 걸었다. 미국도 이란의 해협 재봉쇄에 대응해 더 강력한 카드를 검토하면서 긴장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18일(현지시간) 이란과 교역하는 선박에 대한 봉쇄조치를 유지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해협을 다시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해협을 지나려던 유조선 등에 대한 공격도 잇달았다. 이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선의) 무조건 통과는 미국이 해협 주변 기지와 군사시설을 이란에 대한 침략적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며 비국을 비난했다.
미국도 이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악시오스는 백악관에서 이날 열린 상황실 회의 소식을 전하면서 미 정부 관계자가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전쟁을 재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에 대해 했던 것처럼 공해상에서 이란과 교역하는 선박에 대한 나포 작전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과 이란 양측이 약속한 휴전 시한은 오는 21일까지다. 양측은 당초 19~20일께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2차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날선 공방전이 이어지면서 협상을 다시 시작하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루 만에 급반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7일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모든 것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농축 우라늄을 미국에 넘기고,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재개하며, 핵무기 개발 중단은 물론이고 헤즈볼라와 하마스 등 대리 저항세력 지원을 중단하는 것 등을 전부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는 취재진과 만나 2차 협상은 주말에 열릴 것이라면서 “하루나 이틀 안에 합의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개방한다”고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렸을 때까지만 해도 시장은 반신반의했지만,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직접 엑스(X)에 “레바논 휴전 상황을 반영해 남은 휴전 기간 동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상선의 항행을 전면 허용한다”는 글을 올리자 크게 환호했다. 종전이 코앞에 닿은 듯이 보였다.
그러나 해빙무드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8개의 SNS 게시물을 잇달아 올리면서 이란에 대한 승리를 강조하자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이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즉각 “이란의 농축 우라늄은 국토만큼 신성하고 주권과 분리할 수 없다”면서 “그 어디로도 이전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란 매체들의 텔레그램에는 갑작스러운 지도부의 태도 변화에 대해 “설명을 요구한다”는 글이 잇달아 게시됐다. 메흐르통신은 “외무장관의 추가 설명 없는 트윗(X 게시물)은 트럼프에게 현실을 넘어 자신을 승자로 선언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했다”면서 “휴전 협상은 외무부만이 담당하는 것이 아니다”는 글을 텔레그램 상단에 고정했다.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가 아라그치 외무장관 등 외교라인의 ‘타협’ 분위기에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역봉쇄를 풀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란은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의 에브라힘 졸파가리 대변인은 이날 “호르무즈 해협은 이전 상태로 다시 돌아갔다”며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군의 관리와 통제 아래 있다고 밝혔다. 영국해상무역작전(UKMTO) 기구는 이날 2척의 선박이 피격당했다는 보고를 접수했다고 전했다. 인도 국적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으로 추정된다. 이란은 그간 인도로 향하는 선박을 대체로 허용했으나 이날은 공격했다.
○이번 주가 분수령
악시오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J D 밴스 부통령 등이 참석하는 백악관 상황실 회의를 소집했다.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낙관적 태도를 유지했으나, 이란이 본격적으로 해협 폐쇄에 들어가자 대응 전략을 논의할 필요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백악관은 지상전 시나리오는 최대한 배제하고 이란을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경제적 분노’에 집중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전 세계 공해상에서 이란과의 교역 선박 나포 작전이 실행될 경우 이는 중국이나 인도 등과의 외교적 갈등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이란도 이런 전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이다. 예멘의 후티반군(안사르알라 예멘)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막을 수 있다는 위협을 재개했다. 이란 파르스통신은 후세인 알아지 후티정부측 예멘 외무부 차관의 발언을 인용해 이들이 "바브엘만데브해협을 막기로 결정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열 수 없을 것"이라고 과시했다.
물밑에서는 여전히 메시지 교환이 이뤄지고 있는 정황이 감지된다. 중재를 맡고 있는 파키스탄은 이슬라마바드 내 협상 관련 장소에 대한 보안을 대폭 강화하며 2차 협상을 위한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양측의 입장 차가 여전히 큰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우라늄 농축 20년 이상 금지와 대리세력 지원 중단 등은 이란 측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공언한 내용들이다. 적절한 타협지점을 찾기 어렵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국영TV 연설에서 지난 1차 회담에서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양측 모두 핵심 쟁점이 해결되지 않아 최종 합의까지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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