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연천 ‘착한 의견의 성모수도원’
새 교황 나온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1244년 설립… 1985년 한국 진출, 인천 등 3곳서 18명 수도자 생활
‘다양성 안의 일치’ 공동체 생활 중시
“교황 5차례 방한… 소탈-유머 넘쳐… ‘韓 기회되면 꼭 방문’ 선출뒤 연락와”
검은 옷의 수사(修士·수도원에서 공동생활하는 남성 수도자)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읊는다. 저녁 어둠이 내려앉은 성당 안을 춤추듯 일렁이는 촛불들. 지난달 29일 찾은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경기 연천 ‘착한 의견의 성모수도원’ 저녁 기도는 영화에서 본 중세 유럽 수도원을 연상케 했다.
지난달 새 교황에 오른 레오 14세가 몸담았던 곳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은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는 1244년 성 아우구스띠노(354∼430)의 생활 양식과 수도회 규칙을 따르는 수도자들이 로마에서 첫 회의를 갖고 설립했다. 하지만 그 기원은 사제로 서품된 성 아우구스띠노가 수도자 공동체를 만든 4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세계 40여 개국에서 28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수도회는 한국에는 1985년 진출했으며 현재 인천 전동과 강화, 경기 연천 등 3곳에서 18명의 수도자가 생활하고 있다. 이기훈 살레시오 수사는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영성(靈性)은 ‘하느님 안에서 한마음 한뜻(Anima Una et Cor Unum in Deum)’으로 대표된다”라며 “먼저 자기 자신과의 일치, 그리고 이웃과의 일치, 형제들과의 일치, 더 나아가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생활은 ‘심플’하다. 평일 기준 오전 6시 반 미사와 아침 기도, 낮 기도(정오), 오후 5시 묵상과 저녁 기도, 오후 8시 끝 기도가 끝나면 오후 9시 반 정도까지 공동 휴식 시간을 갖는다. 기도와 기도 사이 시간에는 각자의 공부나 업무를 본다.
교황 레오 14세는 2001년부터 12년간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총장을 역임하면서 5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이기훈 수사는 “(교황은) 매우 소탈하고 유머가 넘치는 분”이라며 “한 번은 숙소가 모자라 인근 수녀원 숙소를 빌렸는데, 다음 날 아침 ‘이불에 깔려 죽을 뻔했다’라고 웃으며 말씀하셨다”라고 전했다. 수녀원에서 온돌방에 두꺼운 원앙금침 같은 이불을 제공했는데, 그런 이불을 덮어본 적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교황은 한국 방문 때마다 수행 없이 짐을 직접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 수사는 “원래 올해가 한국 지부 설립 40주년이라 교황(당시 추기경)을 초청할 계획이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으로 이뤄지지 못했다”라며 “교황 선출 뒤 축하 인사와 함께 한국에 한 번 오시면 좋겠다고 메일을 보내니 ‘기회가 닿는 대로 꼭 방문하겠다’라는 답장이 왔다”라고 말했다.선교사 출신으로는 처음 교황에 오른 레오 14세는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 대한 긍지도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사는 “교황의 사목 표어인 ‘IN ILLO UNO UNUM(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은 성 아우구스띠노의 ‘시편 제127편 해설’의 한 구절”이라며 “레오 14세 교황 문장의 책 위에 화살이 관통한 심장 문양도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표상을 떠오르게 한다”라고 말했다. 이 문양은 성 아우구스띠노의 회심(回心·과거의 생활을 뉘우치고 신앙에 눈을 뜸) 체험을 표현한 것으로, ‘당신께서는 당신의 말씀으로 제 마음을 찌르셨습니다’란 의미라고 한다.
어둠이 내린 호젓한 저녁 산책길. 개구리와 바람에 잎새 스치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내 눈과 귀를 빼앗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 성당 창문 너머로 수사들의 신과 사람, 세상을 위한 찬미가(讚美歌)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도 누군가 간절하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것이 아닐까.
연천=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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