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2021년 작고한 공성훈 작가를 풍경화가로 기억한다. 2000년대 그는 먹구름이 드리운 하늘이나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등 어딘가 불안한 기운이 감도는 풍경화로 미술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더블 블라인드’에서는 다르다. 실험미술에 몰두했던 1990년대 전반의 ‘청년 공성훈’을 만날 수 있다.
1990년대 초 컴퓨터와 영상매체가 보급되면서 국내 미술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테크놀로지와 뉴미디어를 활용한 실험미술이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공성훈은 이 변화의 선두에 있었다. 공성훈은 서울예술고와 서울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서울산업대에 다시 입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했다. 공학 지식은 고스란히 실험미술 작품의 토대가 됐다.
그는 센서에 반응한 장치가 모터를 통해 움직이거나, 전자 회로를 바탕으로 제작한 기계가 작동하는 방식의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블라인드 작업’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초기 연작이다. 블라인드 커튼에 형광 페인트를 칠하고 전기 모터를 장착한 키네틱 설치 작품으로, 그가 탐구한 기술과 결합한 예술 감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다. 원작은 소실됐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남긴 설계도와 스케치를 바탕으로 다시 제작한 작품이 관객과 만난다.
그간 공개되지 않은 작가의 드로잉과 구상 스케치도 전시한다. 작품을 기록한 영상과 작품, 작가의 흔적이 남은 아카이브가 한자리에 모여 그의 창작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유지원 큐레이터는 “작가가 남긴 자료 자체도 작품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아카이브와 작품의 경계를 허무는 방향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남긴 메모에는 창작을 향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리개 얼마나 커도 되나?” “Lens 크기까지” “차라리 복도를 막고 Screen 설치, 뒤에서 투사하는 게 낫지?(충분히 어두울 수 있나?)” “동호 엔지니어링 가서 만들어야겠다” 등 실제 기술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남긴 메모를 읽다 보면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어진 작가의 치열한 고민과 사고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도 1992년 금호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였던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 ‘예술은 비싸다’의 기록 영상, 대형 목탄 드로잉으로 입시미술의 대표적 훈련 대상인 석고상을 재현한 ‘해방 50주년 기념 석고 소묘’ 등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7월 19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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