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감의 역설…VR 멀미, AI가 해결사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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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VR 현실감 높아질수록 '디지털 멀미'도 증가
뇌파·심박 분석으로 멀미 원인 규명…객관적 진단 추진
AI 실시간 예측 기술 개발…교육·헬스케어 활용 기대

  • 등록 2026-07-15 오후 5:30:19

    수정 2026-07-15 오후 5:30:19

[이데일리 안유리 기자] FPS(1인칭 슈팅) 게임을 즐기던 직장인 A씨는 최근 게임을 하다 어지럼증을 느껴 플레이를 중단했다. 빠르게 시점을 돌리고 달리는 장면이 반복되자 화면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곧 두통까지 찾아왔고, 적을 조준하기는커녕 화면을 제대로 바라보기조차 어려웠다. 프로게이머처럼 빠른 움직임을 꿈꿨지만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게임과 가상현실(VR)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실감과 몰입감은 크게 높아졌지만, 이른바 ‘디지털 멀미’를 호소하는 이용자도 늘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멀미는 왜 생기는 걸까.

디지털 멀미는 뇌가 받아들이는 시각 정보와 귀 속 평형감각 기관인 전정기관이 전달하는 정보가 서로 맞지 않을 때 발생한다. 전정기관은 머리의 움직임과 기울기를 감지해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자동차 안에서 책을 읽을 때 멀미가 나는 것도 같은 원리다. 눈은 움직이지 않는 책을 보고 있지만 전정기관은 차량이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를 뇌에 전달한다. VR 환경에서도 눈은 빠르게 이동하는 장면을 인식하지만 실제 몸은 움직이지 않아 두 정보가 충돌하면서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이 나타난다.

수년간 디지털 멀미를 연구해온 임현균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박사는 “몰입도가 높은 환경일수록 멀미가 더 심하게 나타난다”며 “말을 타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시뮬레이터에서 VR을 함께 체험하면 시각과 전정기관뿐 아니라 촉각 정보까지 충돌해 멀미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게임업계도 디지털 멀미를 줄이기 위한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야각(FOV)을 조절하거나 화면 잔상을 줄이는 ‘모션 블러’ 옵션을 제공한다. VR 게임에서는 이동 중 화면 가장자리를 일시적으로 어둡게 만드는 ‘비네팅(Vignetting)’ 또는 ‘터널 비전(Tunnel Vision)’ 기능을 적용해 주변 시야 자극을 줄이는 방식도 널리 활용된다.

디지털 멀미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임 박사 연구팀은 올해 1월 VR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와 커브드 모니터에서 발생하는 사이버 멀미를 비교한 결과, 두 환경 모두에서 비슷한 뇌파 변화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에 따르면 사이버 멀미가 발생하면 졸림이나 피로와 관련된 델타파는 증가하고, 심신이 안정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알파파는 감소하는 공통적인 패턴이 관찰됐다. 연구팀은 이러한 생체신호 분석이 앞으로 디지털 멀미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완화 기술을 개발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VR, 심박수 증가 경향”…헬스 케어 분야 활용 기대

2025년 10월 14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 스포츠챌린지존에서 학생들이 VR(가상현실)을 이용한 복싱을 체험하고 있다. (뉴시스)
2025년 10월 14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1전시장 스포츠챌린지존에서 학생들이 VR(가상현실)을 이용한 복싱을 체험하고 있다. (뉴시스)

충남대학교병원 신경과 권은진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논문에서 전정기능 검사 지표와 VR 멀미 증상 사이에 상관관계를 확인했다. VR 환경에 노출되면 심박수와 심박변이도(HRV)가 뚜렷하게 변화한다는 사실과 함께 멀미 민감도가 높은 참가자군에서 더 큰 생리적 반응이 관찰됐다.

연구에서는 성인 참가자 30명은 롤러코스터 VR 체험이 시작되자 심박수가 평균 3.67% 증가했고 체험이 끝난 직후에는 평균 6.3% 감소했다. 연구진은 긴장 상태가 해소되면서 나타나는 회복 반응으로 해석했다.

멀미 민감도 설문과 VR 멀미 증상 평가를 함께 진행해 평소 멀미에 민감한 참가자일수록 심박변이도 변화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경향도 확인됐다. 권 교수는 “가상현실 멀미는 개인의 전정기능과 자율신경계 반응 특성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바람이나 전정기관을 자극해 VR 멀미를 줄이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지만, 아직 모든 콘텐츠와 모든 이용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만능 해법은 없다. 현재는 콘텐츠 설계 개선, 보조 자극, 개인별 적응 훈련 등 다양한 접근법이 병행 연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뇌파(EEG)와 심박 등 생체신호를 활용해 디지털 멀미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기술이 향후 맞춤형 멀미 저감 기술 개발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어지럽구나?” AI가 실시간으로 생체 신호 자동 분석

최근 해외에서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디지털 멀미를 예측하고 실시간으로 완화하는 기술 개발도 시작됐다. 미국 미주리대학교 연구진은 AI가 사용자의 생체신호를 분석해 멀미 원인을 설명한 뒤 그 원인에 맞는 완화 기법을 실시간 적용하는 설명가능 AI와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VR 멀미 저감 프레임워크를 제안했다. 여러 생체신호를 함께 분석하는 멀티모달 기반 접근이 향후 연구의 방향이 될 전망이다.

다만 아직 실시간 예측 기술이 상용화 궤도에 오른 것은 아니다. 임 박사는 “리얼 타임 측정값 제시는 아직은 매우 어려운 단계”라면서 “EEG 신호로 완벽하게 VR 멀미를 측정하는 방법이 확고하게 안정화 되어야 하고, 그 이후 멀미 반응을 대표하는 EEG 혹은 그 외 생체 신호의 역치값에 대한 연구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안유리 기자]
[이데일리 안유리 기자]

국내 VR·AR 산업은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의 ‘2025 가상증강현실(VR·AR)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VR·AR 사업 매출은 2024년 기준 1조980억원 규모를 기록했다.

VR·AR 시장이 확대될수록 콘텐츠 품질뿐 아니라 이용자의 안전성과 디지털 멀미를 최소화하는 기술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관련 기술은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넘어 교육과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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