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터너의 아시아 최초 대형 회고전,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로로피아나의 100주년 기념전, 그리고 작년 가을 막을 내린 오르세미술관 특별전까지. 상하이 푸동미술관의 국제적인 행보는 2026년 새해도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파리 피카소 미술관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피카소 전시 <폴 스미스의 시선에서 본 피카소> (2025.12.22~2025.5.3)를 향한 열기가 푸동미술관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번 전시가 파리 피카소 미술관의 첫 번째 중국 방문은 아니다. 이미 2011년 상하이미술관에서 진행된 <피카소 중국 대전>에서 62점의 소장품이 공개되었고, 베이징 UCCA 율렌스 당대예술센터(2019년)에서도 피카소 미술관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단순한 소장품 순회와는 결이 다르다. 2023년 파리 피카소 미술관이 작가 서거 5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피카소 셀러브레이션>의 첫 국제 순회전으로, 유화, 목탄화, 조각, 판화 등 80점의 작품이 전통적인 미술사적 시각이 아닌, 동시대 패션계의 거장 폴 스미스(Paul Smith)의 유쾌하고 세련된 관점으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동시에 '피카소다운' 전시
흥미로운 지점은 이번 전시의 중국어 명칭이다. 오리지널 전시 명칭을 그대로 가져온 영문 제목 <Picasso Through the Eyes of Paul Smith>와 달리, 중국어로는 ‘非常毕加索’를 사용했다. ‘毕加索’는 피카소의 중국어 표기이고, 앞의 두 글자 '非常'는 ‘페이창(feichang)’으로 발음되며 일상에서 '대단히', '정말로'라는 뜻으로 빈번히 쓰인다. ‘정말로 감사하다(非常感谢)’, ‘정말 멋지다(非常好看)’ 같은 식이다. 동시에 '常'(일반적인)에 부정사 '非'가 붙어 '비정상적인, 특별한, 비범한'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非常毕加索'는 "무척이나 피카소답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이 중의적 제목은 이번 전시가 지향하는 ‘비상(非常)’함을 정확히 포착한다. 첫 번째는 전시 연출의 비범함이다. 폴 스미스는 최근 수십 년간 미술관을 지배해온 '화이트 큐브' 전시 방식을 과감히 거부했다. 그의 시그니처인 색채, 스트라이프, 패턴이 공간 곳곳에 배치되어 피카소의 작품과 호흡하는 몰입형 환경을 만들어낸다. 미술사가가 아닌 패션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공간은 작품 감상을 넘어 '경험 디자인'으로 전환된다. 폴 스미스 본인은 "많은 공부를 하고 피카소를 이해한 후, 내 시각에서 익숙한 요소들을 선택해 디자인했다"며 조심스러워했지만, 바로 이러한 접근이 관습적 전시 문법에서 벗어난 신선함을 선사한다.
두 번째는 문화 대화의 비범함이다. 파리 피카소 미술관 관장 세실 드브레이(Cécile Debray)는 "피카소 작품을 중국 관객 앞에 가져오는 것은 보편적 의미를 지니며, 이 다른 문화 속에서 그가 어떻게 수용되는지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20세기 서양 모더니즘의 거장과 21세기 영국 패션 디자이너의 협업이 중국 상하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면서, 전통과 현대, 예술과 패션, 동서양 문화가 교차하는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형식을 파괴하고 경계를 넘나들었던 피카소의 예술 정신을 미술사가가 아닌 패션 디자이너가 큐레이션 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피카소답다'. '非常毕加索'라는 제목은 바로 이 다층적 크로스오버가 빚어낸 "대단하고도 피카소스러운" 전시 경험을 담아낸 정확한 명칭으로 다가왔다.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피카소
전시는 회화가 아닌 조각으로 시작된다. 자전거 안장과 핸들을 용접해 만든 <황소 머리>(1942)가 한 벽면을 가득 채웠다. 스페인 문화의 전통과 정신적 유산을 담은 황소의 이미지가 자전거 부품이라는 평범한 오브제로 재탄생하는 순간, 관람객은 이미 피카소의 세계로 한 걸음 들어선 셈이다. 통로 끝, 차분하고 정적인 청색 공간에서는 <남자의 초상>(1902)이 걸려 있다. 허공을 응시하는 무표정한 남자가 카페 긴 의자에 웅크린 채 앉아 있는 이 작품은 파리 피카소 미술관이 소장한 청색 시기 작품 단 세 점 중 하나다.
전시장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곳은 메인 포스터의 주인공이기도 한 <책 읽는 여인>(1932) 앞이었다. 피카소가 열렬히 사랑했던 마리 테레즈를 그린 이 작품은 입체주의적 구성과 둥근 곡선 안에서 경쾌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을 6년 전 베이징 UCCA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회색 콘크리트 벽에 다소 단조롭게 걸려 있던 이 그림이, 지금 상하이에서는 스트라이프 패턴에 둘러싸여 완전히 다른 표정으로 다가온다. 폴 스미스는 이 그림에서 스트라이프 요소를 추출해 전시실 벽면으로 확장시켰고, 관람객은 작품 안의 패턴이 공간으로 흘러나와 자신을 감싸는 듯한 직접적인 시각 경험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피카소의 아들을 그린 <어릿광대 옷을 입은 폴>(1924) 역시 그림 속 의상의 패턴이 벽면으로 펼쳐지며, 작품과 공간이 대화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오르세에서 루브르, 그리고 피카소로
이번 전시는 푸동미술관이 10월 폐막한 오르세미술관 특별전에 이어, 다시 한번 프랑스 최고 수준의 박물관과 손잡은 프로젝트다. 푸동미술관의 국제적인 협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같은 기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패턴의 기적: 루브르 인도, 이란과 오스만의 예술 걸작> (The Wonder of Patterns, 2025.12.13~2026.5.6)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루브르가 중국에서 개최하는 가장 대규모 전시로,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3대륙에 걸친 지리적 범위를 다룬다. 도자기, 보석, 옥석, 유리, 금속, 카펫, 서예, 회화, 조각, 목조 조각 등 이슬람 예술의 중요한 범주를 아우르는 루브르 소장품 약 300점이 전시되며, 푸동미술관 통합권으로 두 전시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오르세에서 루브르로, 그리고 피카소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단순한 블록버스터 전시의 나열이 아니다. 서양 모더니즘의 거장을 동시대 패션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이번 전시는, 동서양 문화 간 크로스오버를 통해 새로운 예술 경험을 제시하려는 푸동미술관의 기획 철학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피카소는 일찍이 "나는 찾지 않는다, 발견한다(I do not seek, I find)"고 말했다. 미술사가들이 피카소를 '찾아' 분류하고 해석하는 대신 폴 스미스는 자신에게 익숙한 색채와 패턴으로 피카소를 발견했다. 상하이 푸동에서 20세기 서양 모더니즘의 거장이 21세기 영국 패션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중국 관객과 만나는 이 순간 역시 하나의 발견이다. 끊임없이 형식을 파괴하고 경계를 넘나들었던 피카소의 정신이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전시는 각각 5월 3일과 6일까지 열린다.
배혜은 칼럼니스트

8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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