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보드게임 제작·유통사인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최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보드게임 ‘메디컬 미스터리: 뉴욕 응급실’ 출시를 알렸다. 이 게임은 네덜란드 보드게임 브랜드 아이덴터티 게임즈가 개발했다. 게임 이용자들은 응급실 의사가 돼서 환자의 병을 분석하고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
게임 속 환자 소개 카드에는 ‘완경기가 지난 53세 여성’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완경(完經)은 여성의 월경 종료를 의미하는 폐경(閉經)을 완곡하게 부드러운 어감으로 표현한 단어다. 이 단어는 1989년 안명옥 당시 국립중앙의료원장이 처음 제시했다고 알려졌다.
일부 게임 이용자들은 ‘폐경기’를 ‘완경기’로 잘못 번역했다고 지적했다. 의학 용어가 아닐뿐더러 페미니스트들이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라는 이유였다.상품 리뷰에는 “의학 용어도 아닌 걸 왜 인정받은 의학 용어처럼 쓰는 거냐” “게임은 잘못 없지만 사상이 묻어서 냄새난다” “완경은 특정 집단의 이념이 들어간 단어다” “논란이 일어날 용어를 멋대로 쓴 게 실망스럽다” 등의 글과 함께 ‘별점 테러’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코리아보드게임즈는 12일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내고 “충분한 검토가 부족한 채로 완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건 사실이지만, 이 단어를 수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제작사는 “의학 용어는 절대불변의 것이 아니다”라며 “산부인과 의사의 입을 통해 완경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의학 용어가 어떤 불가침의 것이 아님을 그 의사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언어가, 용어가 변화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는 당사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어감’이라는 것도 있다”며 “과거에는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이 의학 용어였다. 현재는 조현병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꼽추라는 말은 척추측만증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당사자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부정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 말을 고치는 것이, 전통적 단어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아울러 “폐경을 겪은 당사자들은 상실감이나 좌절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겪는다고 한다. 실제 단어의 뜻과 상관없이 폐경이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일 수도 있다”며 “완경이라는 표현은 삶의 단계 하나를 완료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느낌이라고 한다. 단어 하나를 대체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기분을 줄 수 있다면 써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보드게임을 즐기는 우리도 모두 각자의 어머니가 있었기에 세상에 태어난 존재”라며 “이미 사용된 완경이라는 표현을 거두지 않는 것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여성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제작사 홈페이지에는 ‘입장문 보고 돈쭐(돈+혼쭐·구매로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내주러 왔다’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이혜원 동아닷컴 기자 hye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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